금강산 관광 특구와 실개천 하나로 떨어져 있는 북한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지난 14일 80여명의 남·북 의료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마을 주민도 흰 가운을 입은 남측 의료진을 반겼다. 이날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남·북 의료협력사업 차원에서 세운 ‘온정인민병원’ 개원식이 열린 날이다. 이 지역 유일한 병원이다.

국제보건의료재단은 한국인 최초로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다 지난해 5월 타계한 고(故) 이종욱 박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출범한 정부 출연기관이다.

재단이 지난해 9월 온정인민병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병원은 폐허와 다름없었다. 엑스레이 등 의료 장비는 물론 변변한 의약품도 없었다. 병원 건물은 갈라져 비가 샜고, 전기는 끊긴 지 오래였다. 북한 의사들은 환자의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대나무 통을 쓸 정도로 청진기도 그들에겐 귀한 물품이었다. 남·북 의료협력사업이 시작되면서 병원은 완전히 탈바꿈했다. 진료대가 설치되고, 수술실이 들어섰다. 엑스레이가 들어가고, 초음파가 자리잡았다. 내시경이 도입됐으며,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발전기가 가동됐다.

이로써 1년여 만에 병상 20개 규모의 제법 현대화된 2층짜리 병원(190평)이 완성됐다. 남측 의사들은 2주에 한 번 온정리로 들어가 북측 의료진에 초음파 진단법을 전수하고, 내시경 사용법도 가르쳤다. 그동안 내과·산부인과 등 8개 진료 과목에 걸쳐 남측 의사 54명이 총 46회의 협력 진료를 했다. 국내 의료진이 정기적으로 북한을 방문해 의료 기술을 전수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북한 의사들에게 초음파와 내시경은 처음 접해보는 ‘신기한’ 의료 장비였다. 그들은 밤을 새워 남측에서 제공한 의학 교과서를 공부하고 사용법을 익혔다고 한다. 온정인민병원 박순영 원장은 “남측의 협력으로 8000여 마을 주민에게 질 좋은 의술을 베풀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의 보건의료 사정은 차마 말을 꺼내기가 겁날 정도로 심각하다. 북한 내 수많은 병원이 1년 전의 온정인민병원 형태로 남아 있다. 명색은 국가에 의한 무상 진료 시스템을 운영하지만 국가가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 보니 보건의료 체계가 붕괴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그만 상처가 덧나도 쓸 항생제가 없으니 이것이 고름 덩어리가 되고, 결국은 패혈증을 일으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각 나라의 보건의료 수준 지표가 되는 영아사망률이 북한은 출생 1000명당 42명으로 우리나라의 5.3명보다 약 8배 높다(2007·세계 인구 현황). 영아 사망 원인의 절반은 설사이고, 폐렴이 30%를 차지한다. 기초 의약품만 있어도 예방 가능한 사망이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어린이들이 만성 영양 결핍 상황에 있다 보니 13세 이하 아이 평균 키가 남한 어린이보다 16㎝나 작은 것으로 나타난다(2006·질병관리본부). 우리 어린이에게는 사라져 가는 B형 간염이 북한에서는 아직도 13~15%가 감염자이다. 기생충 질환은 10명 중 9명에서 발견되고 있다.

앞으로 남·북 교류는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의학적으로 남과 북의 각종 질병 교류 또한 피할 수 없게 된다. 앞으로의 평화 체제에 대비해 다른 분야는 몰라도 보건의료 지원 사업만큼은 사전 투자라는 개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결핵 약 하나에 목말라 하는 북한 병원을 보면서 느낀 소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