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경 이화여대 교수

얼마 전 ‘결혼 이민자 가족 모국 방문단’을 따라 베트남에 다녀왔다. 모국 방문(친정 방문)의 취지는 한국인 남편과 자녀들이 아내의 나라, 어머니 나라에 대한 문화를 배우는 기회를 제공해 가족 간의 소통과 이해의 폭을 넓혀 주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천공항에서 호찌민 시까지 대여섯 시간을 가는 동안 몇몇 어린 아이들이 기내에서 쉬지 않고 울어댔다. 부모가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의 울음은 일주일간의 베트남 방문 기간 내내 이어졌다. 신기한 것은 울지 않을 때는 하나같이 아주 조용하고 얌전했다는 점이다. 말이 거의 없고, 한국 아이들 특유의 골목대장 같은 번잡스러움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조용하지만 잘 우는 아이들’에 대한 의문은 며칠이 지나 풀렸다. ‘언어’의 문제였다. 어린 아이들은 베트남 엄마와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베트남 여성들은 자녀에게 한국말을 가르칠 능력이 안 된다. 그렇다고 베트남어를 사용할 수도 없다. 남편과 시부모들이 아이의 한국말 습득이 늦어질 것을 우려해 여성들이 베트남어를 사용하는 것을 금하기 때문이다. 결국 엄마들은 아이와 말을 거의 하지 않게 되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한국어 또는 베트남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울기만 하는 것이었다.

반면 이런 국제결혼도 있다. 텔레비전에 자주 출연하는 프랑스 여성 이다도시씨는 한 프로그램에서 자신은 집에서 아이들에게 프랑스어로 말하고, 남편은 한국어를 사용함으로써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2개 국어(bilingual)를 익힌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마도 시청자들 또한 글로벌 경쟁력을 기르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부러워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결혼하는 부부 8쌍 중 1쌍이 외국인과 결혼하고, 농촌 총각 10명 중 4명이 외국인 아내를 맞이하는 시대이다. 지난해 정부는 다인종·다문화 사회에 대비해 ‘혼혈인 및 이주자의 사회통합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다문화가족’, ‘다문화사회’라는 말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 중 여성 결혼이민자 가족 지원 대책을 보면 인권 보호, 복지서비스 지원 이외에 한국 사회에 대한 (빠른) 적응과 동화를 돕는 한국어와 한국문화교육이 강조된다.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대책들이 한국 사회로의 동화와 적응만 요구하는 문화적 위계(位階)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문화주의는 다양한 문화 간의 차이와 개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인정하는 수평적, 또는 평등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무늬만 다문화이지 대한민국에서 가난한 나라의 문화는 우리의 언어나 문화와 동등한 위치를 가질 수 없다. 프랑스 출신 엄마에게는 허용되는 것이 왜 베트남 엄마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것인가?

학력이 그리 높지 않은 결혼 이민자들은 한국어를 배우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높은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기 또한 쉽지 않다. 한국어는 외국인이 습득하기 어려운 언어 중의 하나가 아닌가. 여성가족부 자료에 의하면 결혼 이민자 가족의 96%가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이는 거의 의사소통을 못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외국어 습득이 어렵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잘 안다. 우리는 십 수 년(때로는 수십 년) 동안 영어공부를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은가.

언어는 의사소통뿐 아니라 표현 및 사고 능력을 키우는 중요한 문화적 도구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정치·경제적 관계를 고려한다면 결혼 이민자 자녀들이 한국어 외에 어머니 나라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경쟁력이 된다. 글로벌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는 단지 베트남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몽골, 캄보디아, 중국 등 결혼 이민이 활발한 모든 나라가 포함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동시에 두 가지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 다른 한 가지 언어 습득을 저해하는 것은 아니다. 더 어린 나이에 더 높은 수준의 영어를 가르치지 못해 안달하는 우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