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조성과 로비 의혹 폭로는 결국 검찰 수사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이르면 6일 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다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그동안 “고발하면 수사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민변이나 참여연대 내부에선 5일 밤늦게까지도 고발대상을 누구로 할지와 고발 범죄 사실을 어떤 의혹으로 할지를 정하지 못하고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변 송호창 사무차장은 “구체적으로 증거가 드러난 부분은 고발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수사를 촉구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고발 대상은 삼성이 김 변호사 이름으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부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이 김 변호사 몰래 차명계좌를 만들어 비자금 50억원을 관리했다는 의혹인데, 이게 사실이면 횡령과 사문서위조가 될 수 있다. 물론 삼성은 차명계좌 존재 자체는 시인하면서도 “특정 개인 재산을 굴린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반면, 떡값 제공 같은 나머지 의혹들은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하기 힘들어 수사를 촉구하는 형태가 될 공산이 크다.

때문에 수사의 범위와 강도를 예상하기는 아직 힘들다. 검찰 관계자도 “고발장이 들어와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5일 김 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가진 기자회견은 검찰 수사를 촉구하기 위한 전초전 성격이었다. 김 변호사가 공개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이외에 기자회견에선 지금까지의 주장에 비해 크게 눈에 띄는 내용이 많지 않았다. 당초 예상됐던 물증이나 문건 공개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비자금 조성 의혹 등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과 주장만으로도 충분한 수사 단서가 된다고 주장했다. 사제단 전종훈 신부는 “이 정도의 국민적 의혹이라면 (검찰이) 내사에라도 들어갔어야 한다”면서 “지금 팔짱을 끼고 있는 검찰의 태도는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도 ‘양심 고백’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검찰이 수사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압박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 임원들의 차명(借名) 비자금 리스트를 일부 갖고 있고, 돈을 건넨 검찰 최고위급 간부가 여러 명 있다”는 ‘카드’를 내밀었다. 검찰이 스스로 수사에 나서지 않으면 공개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