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3일 삼성그룹 내무 문건을 입수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로비를 직접 지시한 내용이 담긴 증거'라고 보도한 것과 관련해 삼성그룹 측은 해당 문건의 존재 여부는 시인했지만 "돈 주지 말고 마음의 정표를 주라는 것이며 '로비지침서'라는 주장은 왜곡됐다"고 해명했다.

한겨레는 3일 삼성그룹 내부 문건을 입수해 공개하고, 이 회장이 정치인과 판검사 등을 상대로 한 로비를 직접 지시한 내용이 담긴 증거라고 밝혔다.

한겨레가 입수한 '회장 지시사항'이라는 제목의 문건은 2003년 11월12일과 같은해 12월29일 작성된 두 가지다.

2003년 11월12일 작성된 문건에는 "호텔 할인권을 발행해서 돈 안 받는 사람(추미애 등)에게 주면 부담없지 않을까? 금융관계, 변호사, 검사, 판사, 국회의원 등 현금을 주기는 곤란하지만, 주면 효과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좋을 것임"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Wine(와인)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와인을 주면 효과적이니 따로 조사해 볼 것. 아무리 엄한 검사, 판사라도 Wine 몇 병 주었다고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임"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로 추미애 전 의원은 KBS와 전화통화에서 "선거 무렵인데 (삼성에서) 도와주려고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제가 그러지 마시라고 심부름 오신 분한테 돌려드리고 그렇게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문건에는 "LG가 해외에서 덤핑을 일삼는다고 하는데, 제대로 하면 몇 조 이익이 날 것을 국가적으로 손해고 전부 같이 망할 수도 있다 하는 여론을 만들어 볼 것. 경제담당이나 교수를 시켜서 삼성, LG의 이익 등을 비교해 홍보하고 이게 얼마나 손해인지 여론을 조성해 볼 것"(2003년12월12일 문건)이라는 내용도 있다. 삼성이 정·관계뿐만 아니라 언론과 학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이 밖에 "참여연대 같은 NGO에 대해 우리를 타겟으로 해를 입히려는 부문 말고 다른 부문에 대해서는 몇십억 정도 지원해 보면 어떤지 검토해 볼 것"(2003년12월12일)이라고 문건에 적혀 있어 시민단체 '우회지원' 의혹도 추후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한겨레는 이 문건은 이건희 회장이 공식 회의나 자택에서 사장단에 지시한 내용을 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가 정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공개된 문건에는 이건희 회장이 언제, 어디서 지시했는지 장소와 날짜도 함께 기록돼  있다. "(노조설립 시도 관련 보고 들으시고) 분당 플라자는 매각하든지, 위탁경영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것(2003년 9월5일 한남동)", "신임임원 교육시 1박 정도 부부동반하여 테이블 매너 및 와인 교육 등 임원으로서의 매너 및 소양교육을 시킬 것(2003년 12월22일 한남동)" 등 내용도 구체적이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측은 "(해당 문건은) 비서실 직원이 회장 발언을 메모해 두었다가 중요하고 긴급한 업무 지시는 즉시 전달하고 단순히 참고할 사항은 모아 두었다가 몇 달에 한번씩 정리해서 임원들이 필요하면 참고로 볼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조선닷컴과 통화에서 "문건이 오래돼 현재 보관돼 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는 "공개된 문건을 보면 대부분 국제경제 동향과 제품개발, 고급인력 확보 등 회사의 경영에 관한 사항들이 대부분"이라며 "한겨레 주장처럼 실제로 돈을 주라는 얘기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 임원은 '돈 안 받는 사람'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그렇다고 이것이 돈을 줬다는 얘기는 아니지 않느냐"고 밝히고 "맥락은 불법적으로 돈으로 로비를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마음의 정표가 담긴 작은 선물을 하라는 얘기"라며 "와인이나 호텔 할인권에 대한 언급도 (선물을) 주었을 경우 문제가 있는지 검토해 보라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와인이나 호텔 할인권 선물도 일종의 '로비'라는 지적에 대해 "명절이면 수십만원 하는 갈비도 마음의 정서상 돌리지 않느냐"고 답했다.

또 문건 중 '한겨레 신문이 삼성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쓴 기사를 스크랩해 다른 신문이 보도한 것과 비교해 보여주고, 이것을 근거로 광고도 조정하는 것을 검토'(2003년 10월18일) 내용과 관련해 "기업 입장에서는 괴롭히는 신문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가질 수 없다"며 "하지만 그 이후에 한겨레 광고비는 줄지 않았다. 광고로 탄압했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회장의 발언 메모는 이행되지 않고 검토단계에서 폐기된 것들도 많다. 또 회장 발언을 녹음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전하는 과정에서 잘못 전달됐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겨레는 현재 삼성그룹 '비자금 차명계좌' 의혹을 공개한 삼성그룹 전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측의 보호 아래 있으며, 재판에 대비해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 모두가 녹취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