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에서 대통령 자리를 원하는 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일본의 경제학자가 시모무라 오사무(下村治)란 인물이다.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업적과 주장은 과장된 현실 인식에 휘둘리기 쉬운 한국 권력자들이 참고할 만한 요소를 담고 있다.

경제 관료 출신인 시모무라는 1961년 이케다 내각이 추진한 ‘소득배증(所得倍增)’ 계획을 입안해 대표적 성장론자로 기록돼 있다. 일본 경제가 설비투자를 중심으로 확대돼 국민소득이 10년간 2배로 늘어날 수 있다는 고도 성장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 경제는 연간 10~12%에 달하는 고도 성장을 달성했고 1인당 국민소득은 이케다 내각의 소득배증 계획이 나온 7년 후 꼭 2배로 늘었다.

시모무라 성장론은 캐치업(catch-up·따라잡기) 방식으로 요약된다. 선진기술을 막대한 기업 설비투자를 통해 흡수해 선진국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논리는 1970년대 이후 한국과 1990년대 이후 중국 경제에서 ‘개발 독재’ 형태로 변형돼 역시 국민소득을 ‘배증(倍增)’시키는 대성공을 거뒀다.

학자가 소신을 바꾸는 것은 힘들다. 시모무라처럼 성공한 학자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1970년대 오일쇼크와 함께 고도 성장시대가 막을 내리자 그는 성장론을 포기하고 변신을 꾀한다. 죽을 때까지 고리타분한 논리로 아우성치는 학자가 대다수인 일본에서 이례적인 경우였다.

‘고도 성장’을 주장하던 그는 정반대로 ‘제로(0) 성장’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고도 성장을 끝낸 일본 경제가 1970년대 들어 일그러지기 시작한 것이 배경이었다. ‘캐치업’을 마무리한 일본 경제는 고도 성장의 힘을 잃었다. 이 힘을 정부가 대신해 (재정) 분배를 통해 성장을 달성한다는 다나카 내각의 ‘일본열도 개조론’이 튀어나온 것이 70년대 초반이었다. 물론 이 포퓰리즘 논리는 땅투기와 물가 급등, 재정 불균형을 유발한 최악의 정책으로 일본 경제사에 기록돼 있다.

시모무라의 논리는 경제 불균형을 낳을 바엔 차라리 성장하지 말자는 강한 주장을 담고 있지만 사실은 아주 합리적인 ‘균형론’이었다. 재정, 자산가격, 임금 등 경제의 어느 한쪽을 건드려 성장을 달성하려고 하지 말고 모든 측면에서 균형을 되찾는 것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시모무라는 그것을 “일본 경제의 절도(節度)”라고 표현했다.

그의 성장론은 재빨리 일본 정부에 의해 수용됐지만 균형론이 수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일본 경제는 1980년대 이후 ‘자산 거품�거품 붕괴�장기 불황�재정 동원�재정 파탄’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따라갔다. 시모무라는 1989년 당시 절정기에 있던 거품 경제를 증오하면서 세상을 떴지만 메아리가 없었다. 정치 권력이 ‘성장론’과 ‘분배론’을 붙잡기는 쉽지만 원래 ‘균형론’을 채택하는 것은 힘들다.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성장에 대한 갈망이 매우 큰 듯하다. 하지만 5년 전 분배에 대한 과잉 기대가 그랬듯, 성장에 대한 과도한 갈망도 앞으로 똑같은 정책적 부작용(자산거품)과 불균형(재정 적자)을 낳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 여론조사처럼 선거가 진행된다면 ‘노무현 이후’ 경제 노선은 분배에서 성장주의로 내달릴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지금부터 과장된 성장론의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 시모무라의 균형론은 그런 점에서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