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교육부 국정감사장에서 로스쿨 정원을 보고하는 김신일 교육부총리(앞)를 손병두(뒤 왼쪽) 서강대 총장과 고충석(뒤 오른쪽) 제주대 총장이 문 밖에서 굳은 표정으로 보고 있다. 로스쿨 총정원이 1500명으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두 총장은 이날 예정에 없이 국감장을 긴급 방문했다.

"오전의 '로스쿨 총정원 1500명' 보고가 부실하다고 모든 의원이 동의했습니다. 교육부총리는 추후 다시 보고하세요."(권철현 국회 교육위원장)

"법에 법무부와 법원행정처에서 의논하고 보고하라고 돼 있습니다. 우리는 총정원을 확정한 겁니다."(김신일 교육부총리)

"그냥 국회에는 통보만 하면 끝이라는 겁니까? 보고는 통보가 아닙니다."(권 위원장)

"법률 해석을 받아보겠습니다."(김 부총리)

"정회할 테니 지금 당장 받으세요."(권 위원장)

17일 오후 4시 서울 정부중앙청사 16층 대회의실 교육부에 대한 국정감사장. 권철현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과 김신일 교육부총리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30여분 동안 정회한 뒤 결국 김 부총리는 10월 26일 오전 다시 보고하겠다고 일단 물러섰다. 이날 교육부에 대한 국정감사는 로스쿨 총정원 문제를 놓고 내내 시끄러웠다.

첫 질의자인 대통합민주신당 이은영 의원은 "적어도 2000명에서 2500명 이상의 수준이 되기 전에는 정식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1500명이라는 총정원이 도대체 어떻게 산출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으니 보고는 받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총장들 항의 방문

대학들의 반발은 더욱 거셌다. 1500명의 정원으로는 로스쿨 인가를 받는 대학의 수는, 개별 대학 정원수를 낮추지 않으면 15곳, 잘게 나누면 20곳 정도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40여개 대학이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국정감사가 열린 정부중앙청사 16층 대회의실에는 고충석 제주대 총장과 손병두 서강대 총장이 나타났다. 고 총장은 거점 국립대 총장협의회의 회장으로서 '로스쿨 총정원이 이렇게 적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10개 국립대 총장들의 의견서를 교육부에 전달하기 위해 오전에 급거 비행기를 타고 왔다. 전날 성명서를 낸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손 총장은 "국립대와 앞으로 행동을 같이 하기로 하고, 국회의원들과 교육부에 우리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두 총장은 사무실 앞에서 만난 김신일 부총리에게 "총정원 1500명이면 고시 낭인(浪人)이 계속 나오고 민란이 일어난다"고 말했고, 김 부총리는 "민란은 안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로스쿨비대위(올바른 로스쿨을 위한 시민 인권 노동 법학계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법조계의 의견만 받아들이고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벌인 교육부의 로스쿨안을 전면 거부한다"고 강조했다. 비대위는 "총정원 3000명 이하의 로스쿨은 법조계의 특권을 공고하게 만들고, 법학 교육을 붕괴시킨다"며 "전국의 전체 대학들과 함께 로스쿨 인가 신청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밀실에서 결정

이번 교육부안에 대해선 밀실에서 결정됐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 7월 법안이 통과된 이후 총정원에 대해 단 한 번도 공개 토론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그간 법원행정처장, 법무부 장관을 한 차례씩 만나 협의하고 법학계와 대한변협의 의견을 들었을 뿐이다. 그 결과 법조계의 요구(1200~1500명선)만 감안하고 3000명 이상을 요구하는 등의 다른 주장은 반영되지 않았다.

또 향후 필요한 법조인에 대한 교육부 계산이 잘못된 근거를 토대로 이뤄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안 대로 결정되면 현행 사법고시는 2013년까지 유지된다. 2009년 로스쿨 첫 해 신입생이 졸업하는 2012년부터 5년간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법조인과 사법고시 합격·사법연수원 수료를 통한 법조인이 동시에 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2012년에는 사법연수원 수료자(1000명)와 변호사 시험 합격자(중도 탈락자와 합격률 80% 감안할 경우 1000여명)를 포함해 2000여명이 되고, 로스쿨 입학정원 2000명이 졸업하는 2016년에는 2400여명의 법조인이 나오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교육부는 2021년까지 법조인 1인당 인구수를 현재의 5758명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인 1482명으로 낮춘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건국대 한상희 교수는 “인구 수뿐만 아니라 사건 수도 감안해야 필요한 법조인 수가 정확히 계산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변호사 1인당 민사사건 수는 189건으로 미국(15.6)의 12배, 일본(24.3)의 7배, 독일(16.6)의 11배에 달한다. 1인당 인구 수가 아니라 사건 수로 하면 더 많은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교육부가 이를 무시하고 밀실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