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소 짓기를 청해도 웃지 않았다. 그는 고집스러웠다. 미국 애나폴리스에서 만난 로버트 카플란은 조선일보 독자들에게“이전에는 몰랐던 가치 있는 것들을 제가 보여 줬으면 합니다”라는 글귀와 사인을 건넸다.

로버트 카플란(Robert Kaplan·55)은 골방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를 만난 건 9·11 다음날 미국 메릴랜드 주도(州都) 애나폴리스의 해군사관학교 바로 앞 작은 집에서였다. 안온한 초가을 서정이 내려 앉은 집 바깥과 달리, TV·침대 말고 살림살이라곤 없는 집이 휑뎅그렁했다. 해사 방문 교수인 그는 해사 측이 마련해 준 이 집에 강의가 있는 매주 이틀만 머문다고 했다.

'신보수주의자(neo-con)'로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분쟁지역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국제문제에 대한 분석과 예측을 내놔 주목 받았고, 미국의 군사·외교 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면 카플란을 읽으라"고 했고, "카플란에 매료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별장까지 그의 저서 '타타르로 가는 길'(Eastward to Tartary)을 가져가 읽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승자학'(Warrior Politics)은 뉴트 깅리치 미국 전 하원의장이 "9·11 이후 미국의 대응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면 필독하라"고 권했다. '발칸의 유령들'(Balkan Ghosts)은 유고슬라비아 전쟁(1991~2000)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보스니아 군사 불개입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가 백악관에서 흘러 나오고, 클린턴이 겨드랑이에 끼고 있는 게 목격되면서 판매에 불이 붙었다.

한때 '극우 국수파' '주전론자(主戰論者)'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그는 '월간 애틀랜틱(Atlantic Monthly)'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도 해외통신원을 맡고 있으며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포브스에도 칼럼을 써왔다. 이번 주 번역 출간된 '지중해 오디세이'(Mediterranean Winter·민음사)에서 그는 "2류 대학(코네티컷 주립대 영문과) 나와 대도시 신문사에 지원했다 계속 낙방해 버몬트의 허름한 지방 신문사에 다니다 사표 내고 지중해 여행을 통해 미래를 설계했다"고 털어 놓았다. 이스라엘 주둔 미군에서 1년간 복무했고, 그 뒤 동유럽·중동과 특히 에티오피아·아프가니스탄·이란·이라크·우간다·수단·시에라리온 같은 분쟁 지역을 찾아 다녔다.



―스물 셋에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유럽행 편도 비행기만 끊어 훌쩍 떠날 당시 무슨 생각이었나? 그래서 쓴 '지중해 오디세이'는 어떤 책인가?

"그땐 젊었고 색다른 방랑을 원했다. 당시의 취재와 기록이 저널리스트로서 밑바탕이 됐다. 나로선 열 번째 책이고, 정치색을 띠지 않은, 드물게 사적(私的)인 순수 여행서다. 기억과 기록으로 썼는데, 점차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어 기록해 놓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에서의 군 복무 경험이 이후 삶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병영 체험은 좋은 것이고, 그것이 나를 현실주의자로 이끌었다. 그곳에선 모두가 군 복무를 했고, 안보 상황이 무척 생생했다."

―당신의 저서들에는 미래를 예측하는 대목이 많다. 누구를 또는 무엇을 단골 정보원 삼는가?

"많이 읽고 많이 만난다.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독서가 가장 쉬운 방법이다. 미래는 반복되지 않지만, 역사를 알수록 예측은 쉬워진다."

―당신은 도발적인 글로 종종 세상을 달궜다. '미국 정치·경제적 지도자들은 기독교 윤리를 내팽개쳐라' 같은 주장이 그렇다.

"개인적인 도덕성과 회사 또는 나라를 경영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 책무는 구분돼야 한다. 더 큰 선(善)을 생각해야 하고, 개인적 도덕성을 뛰어 넘어야 한다. 저술가로서의 배짱(guts)이란 것이 즐거운 건 아니지만, 무얼 쓰더라도 비판을 각오해야 한다. '내가 이걸 왜 쓰는가'를 상기해야 한다. 남을 의식하고 조종 받을 바에 뭐 하러 쓰는가? 익명의 블로거·네티즌 공세가 최악인 이 시대에도, 책은 여전히 영향력이 있고 정의를 위해 존재한다."


―당신을 가리켜 국익 우선론자라고도 한다. 군대의 보호 속에 종군 취재를 하도록 한 미 정부 취재 방침(embedding program)을 옹호하며 '기자이기 앞서 한 나라의 국민이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기자이자 미국 시민이다. 기자는 중요한 존재(somebody)다. 보통의 저자라면 진실만 전하면 되지만, 기자라면 자신의 관점을 전하는 것이고 그것은 미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함께 보여준다는 의미다."

―지난해 10월 '북한이 무너진 뒤(When North Korea Falls)'라는 칼럼을 월간 애틀랜틱에 게재해 화제를 일으켰다.

"칼럼 쓰기 앞서 한국사를 공부했고, 한국을 방문해 취재도 했다. 어딜 가든, 그에 앞서 그 지역 역사를 먼저 공부한다. '지중해 오디세이' 때도 마찬가지로, 무작정 길을 나섰지만 그 전에 지중해 연안국 역사를 축적해 놓았다. 과거의 기록을 제대로 읽으면 현재의 풍광이 더 잘 보인다는 게 지론이다. 북한은 일반의 인식과 달리 이성적이다. 미사일 위협을 통해 긴장 상황을 만들고 미국과 1대1 협상을 하려는 건 고립된 북한 입장에서 매우 영리한 전략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졌던 한국인 인질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국제 협력에 있어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인질 사태에 관해선 국제적 공조가 중요하다."

―미국은 제국으로서 정점에 올라 내리막길이 불가피하고, 중국은 통일 한국(Greater Korea) 시대 아시아의 유력한 승자가 될 걸로 내다봤는데.

"미 제국이 쇠락할 것은 확실하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일지 알 수 없다. 제2차 대전 후 미 해군이 사실상 지배했던 태평양만 해도 한·중·일·호주 해군이 강화돼 다극화 체제가 굳어가고 있다. 통일 한국은 식민역사 때문에 일본과 긴장 상태가 유지될 것이고, 정서적으로 중국과 가까워질 것이다."

―두터운 고정 독자를 가진 작가로서 인기 비결은?

"나는 어떤 누구도 만족시키려 글을 쓰지 않고, 절충자(gap-filler)가 될 생각도 없다. 이라크에 국한하지 않고 다른 저자가 건드리지 않은 세계의 모든 현안을 쓰려고 한다."

―앞으로 저술 계획은?

"2년 전 낸 '제국의 최전선(Imperial Grunts: The American Military in the Ground)' 속편을 막 마쳐 가제본이 나왔다. 이제 다른 주제로 쓸 계획이다."

―스스로의 기록과 장서가 방대할 것 같다. 글을 쓰는 서재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매사추세츠 스탁브리지 내 서재는 산과 숲을 앞에 둬 정경이 빼어나다. 크지는 않지만 책과 동양에서 갖고 온 카펫들로 가득한 아늑한 공간이다. 책은 수천 권 있는데, 그리스·터키·중앙아시아 식으로 지역별로 자료를 분류해 뒀다. 어떤 주제를 쓸까 궁리할 때 항상 지도를 먼저 본다."

―글은 하루 중 언제 쓰는가?

"아침형 인간(morning person)이다. 아침 5시에 일어나 뉴스나 이메일이 쇄도하기 전까지 집중해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