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터 차 · 조지타운대 교수

지난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Bush) 대통령의 합동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한국전쟁 종결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하는 어색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통역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음달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좀 더 유화적인 대북 메시지를 보내도록 압박하려 한 것도 아니었다.

기자회견 당시 노 대통령이 보여준 행동은, 한국이 미국의 대북정책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 공개 석상에서 동맹국 간에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 역시 전혀 없음을 보여줬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나 유엔 총회 같은 다자(多者) 회담이 열리는 곳에서는 주요 동맹국의 지도자들끼리 몇 차례 회담을 할 기회가 생기게 된다. 이런 ‘양자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미국 정부 내에서는 심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국은 미국과의 양자 회담 대상국 중에서 우선 순위가 높은 나라다. 한국은 이라크와 레바논,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병하는 등 미국과 확고한 동맹 관계를 맺고 있을 뿐 아니라, 양국 간에는 북한, 6자회담 등 논의해야 할 현안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양자 회담을 한 뒤에는 양국의 공식 대변인을 비롯해 어느 누구도 두 정상이 논의한 내용에 대해 언급해서는 안 된다. 6자 회담이나 다가올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장기 전략과 외교에 관한 논의는 양국 정상 간에 조용히 공유돼야 하는 것이다. 양국 정상 간 회담의 특징을 나타내는 공식적 메시지는 양측의 충분한 조정을 거친 뒤에 발표하는 것이 관례다. 대부분의 정상회담이 ‘성공’으로 규정되는 것도 이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시드니에서 벌어진 해프닝은 노 대통령이 공식적 메시지와 비공개 대화의 이런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해 발생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아마 부시 대통령과의 비공개 대화에서도 평화조약체결 가능성을 김정일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부시 대통령을 압박했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보여준 반응은 (제4차 6자회담의 결과로 나온) 2005년 9월 공동선언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을 종결시킬 항구적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는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서부터 시작될 수는 있겠지만, 충분하고 검증 가능한 북핵 해체 없이는 결코 그 논의가 마무리될 수 없다. 노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그 이상을 요구하며 부시 대통령을 압박한 것은 한국의 국가안보이익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비핵화에 앞서 평화조약부터 공식 제의하겠다고 말해주길 원한 것일까. 왜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해줄 평화조약에 서명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오히려, 노 대통령은 APEC에서 기자회견 기회를 이용해 미국이 6자회담을 진전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써왔는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할 수도 있었다.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동결된 북한 자금 반환을 위해 막후에서 노력한 미국 덕분에 BDA 문제가 해결된 직후, 노 대통령은 한 연설에서 ‘6자회담을 중단시키려는 미국 강경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북한) 비핵화 절차를 진전시킬 수 있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 발언엔 6자회담에서 미국이 보여준 인내와 정치적 의지에 대한 감사함은 전혀 없었다. 가장 가까운 동맹국을, 그것도 공개석상에서, 시드니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 진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는지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는 것은 더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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