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35·해외도피중)씨가 성곡미술관 큐레이터(전시 기획자) 및 학예실장 재직시절(2002년 4월~올해 7월) 국내 굴지의 기업·은행들로부터 거액의 전시 기획전 후원을 대거 유치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기획예산처 국장’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일 것으로 보인다. 변 전 실장 외에, 신씨에게 이런 도움을 줄 만큼 친분이 두터운 기획예산처 고위간부가 있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신씨와 함께 성곡미술관에 근무했던 A씨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당시 신씨는 ‘기획예산처에 아는 국장이 있는데 그 양반 도움으로 기업체 후원을 받겠다’는 말을 했으며, 그 국장을 자주 만났다”고 밝혔다.

신씨가 성곡미술관에 재직하는 동안 변 전 실장은 국가예산을 짜는 기획예산처 차관과 장관, 청와대 정책실장 등의 자리에 있었다. 이에 따라 변 전 실장이 직위를 이용, 기업이나 은행으로부터 신씨의 기획전 후원을 받아냈는지(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획예산처 국장'은 변 전 실장?

신씨는 성곡미술관에 재직하는 동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후원을 유치했다. 특히 대우건설로부터 7차례, 산업은행으로부터 3차례 후원을 받았다.

신씨의 전시회를 후원할 당시 대우건설 사장이었던 박세흠(58) 대한주택공사 사장과, 작년부터 신씨 전시회 후원에 적극 참여한 산업은행의 김창록(58) 총재는 변양균(58) 전 실장과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경제기획원 예산 관료 출신인 변 전 실장은 2000년 이후 기획예산처 국장으로 근무하다 현 정부 출범 후 기획예산처 차관, 장관으로 승진했다. 이에 따라 변 전 실장과 신씨는 최소한 변 전 실장이 국장이던 2000년대 초부터 알고 지냈으며, 신씨는 변 전 실장이 차관으로 승진한 뒤에도 주변 사람들에겐 '기획예산처 국장'이란 칭호를 계속 사용하면서 그에게 후원 유치 도움을 받겠다고 말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대우건설이 신씨의 성곡미술관 전시를 후원한 기간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로 박 사장이 대우건설 사장으로 재직했던 기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또 산업은행은 2006년 이후 최근까지 신씨의 기획전 세 개를 모두 후원했는데, 세 개의 후원 모두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가 취임(2005년 11월)한 후에 이뤄졌다. 이에 대해 박세흠 사장은 “그런 후원을 했는지 모른다. 실무자가 판단했을 것이다”고 밝혔다. 김창록 총재도 “외부 협찬은 (홍보)실장 전결 사항이라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변 전 실장 등 외부의 청탁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대우건설 실무관계자들은 “대체로 미술관 후원은 윗사람 지시없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배후 실력자는 없을까

신씨의 기획전을 후원한 곳에는 대우건설과 산업은행 외에 국내 간판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2003년 이후 신씨 기획전에 1~2번씩 후원을 한 기업체에는 삼성전자, LG, 기아자동차, 하나은행, 신한은행, 국민은행, 포스코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은 1회에 수천만원씩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미술계에선 모기업이 있는 미술관들이 다른 기업으로 부터 후원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렵고 이례적인 일이다. 성곡미술관 역시 신씨가 오기 전에는 9년 동안 외부 기업체의 후원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신씨가 변 전 실장의 고교 동창이 경영을 맡고 있는 기업뿐 아니라, 재계와 금융권 랭킹 상위업체들의 후원을 독식한 데에 변 전 실장 외에 다른 실력자의 지원이 작용했는지 여부도 검찰 수사에 의해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