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균(58)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가짜 박사 신정아(35)씨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는 신씨 컴퓨터에서 복구해낸 100여통의 이메일이다. 그러나 검찰이 복구해낸 것은 일부분이다. 주로 신씨가 2005년 가을 이전에 변 실장한테서 ‘받은 편지함’일 뿐이고, 그 후 2년간 받은 편지함과 신씨가 보낸 편지함은 아직 복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신씨와 이메일을 주고받은 변 전 실장의 청와대 집무실 컴퓨터를 왜 검찰이 아직 확보하지 않는지 의문이 일고 있다.

◆"검찰, 변씨 컴퓨터 빨리 확보해야"

검찰은 본지가 지난 8월 24일 변씨가 신씨 가짜 박사 학위 파문에 연루된 의혹을 제기한 지 18일이 지난 11일까지 변씨의 집무실이나 개인사무실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10일 브리핑에서 "변씨의 이메일 계정과 통화내역 등을 압수수색했느냐"는 질문에 "아직 안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자체 조사한 내용을 넘겨받았느냐"고 묻자 "필요하면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이 청와대에 남아 있을 결정적인 증거들을 확보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변 전 실장이 최근 2년간 주고받은 이메일은 이번 수사의 성패가 걸린 핵심 증거물이다. 최근 2년간 두 사람의 행적과 신씨의 부탁, 변 전 실장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등 모든 비밀이 변씨의 컴퓨터에도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은 변씨가 자신의 공적 지위를 개인적 관계를 위해 이용한 ‘직권 남용’ 혐의와, 신씨가 지난 7월 미국으로 도피할 때 도운 혐의도 수사 중이다.

그래서 변씨의 컴퓨터는 교신 내용을 중복 체크할 수 있는 또 다른 ‘판도라 상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검찰이 변씨 컴퓨터를 곧바로 확보하지 않는 데 대해 일각에서는 ‘검찰의 또 다른 청와대 눈치보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확보 여부와 시점이 수사 의지 잣대”

검찰 고위 관계자는 11일 “개인 컴퓨터도 아니고, 공무상 쓰는 국가 기물인데 함부로 가져올 수 있느냐”고 말했다. 서부지검 수사팀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청와대와 업무 협의를 통해 임의 제출 받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검찰은 아직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변씨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검찰은 청와대가 조사한 내용 중 변씨에 대해 내사 중인 사적인 부분만 받을 수도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변씨의 직권남용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면 당연히 변씨가 보낸 이메일이나 통화 내역 등을 조사해 신씨의 청탁을 들어준 단서를 확보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고 미적거린다면 이는 그 사이 단서를 지우라는 의미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검찰 간부 출신인 이경재(李炅在) 변호사는 “청와대가 진심으로 진상을 밝힐 의사가 있다면 검찰의 협조 요청이나 사상 초유의 압수수색 같은 수모를 당하기 이전에 변씨 컴퓨터와 자체 조사한 내용을 검찰에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2005년 국정원 도청 사건 때는 국가정보원을 압수수색했다.

물론 최근 18일 사이 변씨가 컴퓨터 저장 내용을 삭제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검찰의 한 간부는 “변씨가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변씨측이) 전문가를 동원해 컴퓨터를 망가뜨리기 전에 빨리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씨 집에서 이메일 외에 변 전 실장과 신씨의 ‘부적절한 친분’을 보여주는 다른 물증이 나왔듯 변씨의 집이나 개인 숙소에서도 의외의 증거가 나올 수 있는 만큼 컴퓨터와 자택 압수수색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신씨 자택 압수수색도 수사 착수 44일째에서야 실시, 뒷북 수사라는 지적을 받았었다.

변씨의 컴퓨터와 집무실 등의 자료 확보 여부와 시기, 방법은 청와대와 검찰의 관계, 두 기관의 진상규명 의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