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작년 여름 설악산에선 산이 생긴 이래 가장 큰 물난리가 났다. 내설악의 백담계곡·십이선녀탕계곡, 오색약수 부근 흘림골, 한계령에서 원통 쪽으로 흐르는 자양천 등 설악의 큰 계곡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다. 산꼭대기도 마찬가지다. 서북능선의 귀때기청봉, 화채능선의 화채봉, 공룡능선의 1275봉, 가리봉 능선의 가리봉 등 설악산 정상 부근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대청봉도 정상 바로 아래쪽 두 곳에서 산사태가 났다.

그런데 수해 피해를 복구한다며 산꼭대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사를 보면 좀 황당하다. 산꼭대기 산사태는 경사 60도, 70도 지반이 무너진 것이어서 인력으로 복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관리당국은 산사태 복구를 명분으로 강돌을 헬기로 올려서 등산로 바닥에 돌을 깔거나 철계단 등 인공구조물을 설치하고 있다. 오색~대청봉, 천불동계곡~대청봉, 공룡능선~대청봉, 한계령~대청봉, 백담계곡~대청봉 등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 전 구간에 걸쳐 빈틈없이 돌 깔기와 계단 설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의 등산로 정비에만 100억원 이상의 수해복구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사업은 결과적으로 대청봉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일 것이다. 대청봉이 어떤 곳인가? 남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눈잣나무, 만주송이풀, 기생꽃 같은 북방계 희귀식물들의 생육 공간이다. 설악산 높은 곳의 바위지대와 초원지대는 북쪽에 고향을 둔 식물들이 남하해 자랄 수 있는 남방 한계선이 되고 있다.

10년쯤 전엔 대청봉 눈잣나무 군락지 옆 등산로에 멸종위기 식물인 기생꽃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등산로 침식을 막기 위해 설치한 철도침목 근처에도 어떻게나 많은 개체가 자라는지 등산로를 따라 걷는데도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지금은 흙과 바위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기생꽃은커녕 다른 풀 한 포기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인데도 대청봉으로 사람 끌어들이는 등산로 공사를 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청봉을 보호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우선은 탐방객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다. 대청봉에 5년만 자연휴식년제를 시행해 보라. 식생이 확연히 회복될 것이다. 이것은 아스팔트도로보다 더 단단하던 대청봉 야영지에 사람 출입을 금지한 후 식물 생태가 회복되는 것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두 번째 방법은 생태 훼손을 막아줄 시설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대청봉 생태계에선 바위지대와 초원지대 보호가 핵심이다. 과거에 많았던 기생꽃 생육지도 바로 이런 곳이었는데 탐방객들이 밟고 지나가면서 멸종돼 버린 것이다. 따라서 탐방객들의 발길이 직접 지면에 닿지 않도록 해서 훼손을 줄이고 새로운 식생이 자연적으로 발달하도록 유도하는 시설을 해야 한다. 바닥에서 일정 높이만큼 떨어져 있어서 햇빛이 들 수 있는 목재 데크(deck)를 설치하는 게 한 방법이다. 전에는 산에 데크를 만드는 것은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반대하는 시각이 있었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문제만은 아니다.

달포쯤 후면 설악산 대청봉엔 단풍 산행객이 몰려들 것이다. 수해복구의 명분으로 새로 놓은 길들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이 보다 쉽게 대청봉에 오를 것이다. 대청봉 생태계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더 큰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누구 책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