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간 오빠'가 대학로로 돌아온다. 1990년대 초반 이후 거의 자취를 감췄던 사회 풍자극의 귀환이다. 가출할 땐 조용히 사라졌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요란하다. 8월 마지막 주에는 춘향전의 인물 변학도를 통해 현실의 권력을 돌아보는 연극 '변'(황지우 작·이상우 연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풍자하는 연극 '정말, 부조리하군'(이윤택 작·채윤일 연출)이 동시 개막한다.

사회 풍자극의 컴백에는 이유가 있다. 연극이 본연의 사회적 기능을 잃어버렸다는 문제의식이 하나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의성이 또 하나다. '모노드라마(1인극)' '주연·연출' '독백' 같은 연극 용어들이 정치판의 부정적 언어로 쓰이고 있는 데 대한 거부반응도 있다. 연극평론가 김윤철씨는 "사회극 또는 정치극을 소생시켜 '극적'인 정치를 추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춘향도 몽룡도 없이 변학도를 주인공으로 세운 풍자극 '변'.

독재자는 똥?

'거기' '돼지사냥'으로 유명한 극단 차이무의 풍자 코미디 '변'은 춘향전을 원작으로 했지만, 몽룡도 춘향이도 월매도 방자도 향단이도 등장하지 않는다. 변('변학도'를 줄여 부른 것으로 '똥'을 뜻하기도 한다)과 아전들, 기생들의 이야기다.

극중 변학도는 대제학의 자제로, 두주불사에다 문장가다. 변학도에게 당할 때마다 비상대책회의를 여는 아전들과 기생들은 정작 변학도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 자기들끼리 '실세'라고 부르는 그들이 권력 앞에 무기력한 모습은 우리 현대사의 단면이다. 제작진은 "이 풍자극의 배경은 조선 중기일 수도 있고, 제3공화국이나 지금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연은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변라도팀과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변상도팀 등 둘로 짜여 있다. 말맛을 보여주면서 지역감정이라는 문제를 극복하고 싶었다고 한다. 주인공 변학도는 변라도팀에선 문성근이, 변상도팀에선 강신일이 맡는다.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언론의 자유가 없을 때는 연극이 그 역할을 담당했는데 10년 넘게 정치극이나 사회극이 실종돼 답답했었다"며 "'변'은 민생을 맡고 있는 사람들, 즉 지식인이나 지도자가 책임 안 지고 딴짓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연극"이라고 말했다.

최용민 정석용 박광정 김승욱 신덕호 이성민 전혜진 등 낯익은 배우들이 출연한다. 31일부터 9월 14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02)3673-5580



남북 정상회담도 풍자한다

"결국 당신은 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통치자가 되었군요!"가 '정말, 부조리하군'의 홍보 카피다. 연극이 개막하는 오는 29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보너스'는 정상회담이 10월 초로 연기되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2007년 가장 시끄럽고 가장 황당한 무대'라는 홍보 문구는 유효한 것 같다.

극단 쎄실의 '정말, 부조리하군'은 부조리한 한국 정치 현실을 비춘다. 독일 작가 뒤렌마트의 '로물루스 대제'에 우리 정치 상황을 넣어 개작했다. 결말 부분엔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작가(최규하)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빗댄 키 작은 남자(주호수)가 대담을 나누다 권총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들어 있다.

로물로스 대제는 게르만이 침공하는데 한가하게 역사 공부에 매달렸다는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다. 작가(황제)의 잠 속에 서기 476년 서로마에서 온 기병대장이 도착하며 시작되는 '정말, 부조리하군'에서 황제는 TV해설자보다도 영향력이 없고, 인터넷에 댓글이나 올리고, 재정 파탄에 우방국과의 관계는 악화되는데 북녘에 쌀·시멘트를 퍼주는 사람으로 설정돼 있다. 그러나 이윤택은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지도 칭찬하지도 않고 풍자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말, 부조리하군'은 지난달 밀양연극촌에서 초연됐다. "통치자를 너무 미화한 것 아니냐"는 평도 있고 "씹다 말았다"는 반응도 나왔다. 29일부터 9월 30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 (02)763-1268



대통령 선거 직전엔 마당놀이도

극단 미추가 오는 11월 21일부터 12월 20일까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공연할 마당놀이에도 정치 풍자가 들어온다. 고전 '박씨전'과 그리스 희극 '리시스트라테' 등을 섞은 작품으로, 제목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박씨전'은 박색이지만 초인적인 능력으로 풍요를 가져다주는 박씨부인이 주인공이고, 아리스토파네스의 '리시스트라테'는 여성들의 섹스 파업을 다룬 코미디다.

연출가 손진책은 "대선(大選)이 올해 가장 뜨거운 이슈이기 때문에 마당놀이에도 정치풍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어느 후보를 편들거나 깎아 내리진 않겠지만, 정치적 소재들이 자연스럽게 마당놀이 안으로 녹아들 것"이라고 말했다. 미추는 2002년 대선 직전에도 '심청전'을 올리고 청문회 형식을 들여와 인물들을 검증했었다. 이번 공연에도 윤문식 김종엽 김성녀 '마당놀이 삼총사'가 출연한다. (02)747-5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