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건물 앞. 음식 썩는 냄새가 확 풍겼다.

이랜드그룹 계열의 뉴코아, 홈에버에 입점한 상인 120여명은 이날 오후 1시30분 민주노총으로 몰려와 팔지 못해서 썩은 토마토와 사과, 배추 등 과일과 채소가 가득 든 커다란 비닐 봉지 2개를 건물 앞 도로에 쏟아부었다.

“고객들에게 팔아야 할 과일과 채소가 연일 계속되는 민주노총의 매장 봉쇄 집회 때문에 팔지 못하고 썩어나가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민주노총은 영세상인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매장 입점 상인들이 내지르는 구호에는 악이 받쳐 있었다. 이들은 “민주노총은 이랜드 사태에 개입하지 말라”고 요구하며 건물 진입을 시도,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 23일 오후 이랜드 계열의 뉴코아와 홈에버 협력업체 관계자들과 입점 매장주들이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을 방문해 매장을 점거하는 등의 영업방해 행위를 그만두라고 촉구하고 있다.

◆매출 급감·재고 누적

입점 상인들이 민주노총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던 시각,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 매장 안은 썰렁했다. 민주노총과 이랜드 노조원들이 언제 다시 매장으로 진입해 들어올지 몰라 입구에는 경찰 버스 3대가 주차해 있고, 100명이 넘는 경찰관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 여성 의류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수진(37)씨는 “이런 분위기에 누가 쇼핑하러 올 마음이 나겠느냐”면서 “지난달에만 470만원 적자를 보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달 초순부터 시작된 민주노총과 이랜드 노조원들의 이랜드 계열 매장 불매운동은 두달째 계속되고 있다. 노조원들은 불시에 매장 점거 농성을 시도하고, 매장 출입구 창문에 스프레이로 욕설을 써놓거나 매장 안에 똥물까지 끼얹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벌이고 있다.

이랜드 계열 매장에는 17개 홈에버점에 1300여개, 33개 뉴코아점에 3500여개 입점 가게가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2만여명의 매장 점주와 종업원들도 상당수가 서민들이다. 의류매장의 경우 상당수 입점 상인들은 가게 매출액의 10~15%를 본사로부터 받는 것을 수입으로 삼고 있다. 뉴코아 강남점에서 아동복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41)씨는 “의류매장 상인들은 직원들 월급을 주고 나면 월 수입이 200만~300만원 수준이 대부분”이라며 “우리 같은 서민이 왜 민주노총의 투쟁에 희생돼야 하느냐”고 말했다. 스포츠의류점 주인 김태준(44)씨는 “은행에서 1억원을 대출 받아 봄·여름 상품을 준비해놓았는데, 장사를 제대로 못해서 재고가 작년의 4배”라면서 “은행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조원들은 사라지고 전문 데모꾼들 모여”

상인들은 최근 이랜드 투쟁을 주도하는 곳이 이랜드 노조에서 민주노총으로 바뀌면서 정치적인 성격으로 변질됐다고 말한다. 뉴코아 강남점에 입점한 한 상인은 “이랜드 노조원들은 같은 층에서 일해서 얼굴이 익숙하다”면서 “영업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민주노총 산하의 전문적인 시위대”라고 주장했다. 한양대 경제학과 김재원 교수는 “이랜드 사태에서 민주노총은 제3자이면서 끼어든 만큼, 점주들이 손해배상을 요구한다면 민노총에게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숭실대 법학과 강경근 교수는 “초기 점거 주동자들에 대해 법원이 무더기로 영장을 기각하는 등 사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한 바람에 할인점 입점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