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에 납치당한 한국인 인질들의 가족들에게서 우리는 인간으로서는 좀처럼 견딜 수 없는 극도의 정신적 고통 가운데서도 냉철한 이성을 잃지 않으려는 강인한 자제력을 목격하고 있다. 반면 인질사태의 근본 책임을 테러리스트 아닌 미국의 대(對)테러 전쟁에 뒤집어 씌우려는 일부 정치인들과 반미(反美) 패거리의 언동에서 우리는 또한 ‘대책 없는’ 군상들의 끝없는 교활함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운명을 결정하는 싸움의 대치선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과 반(反)이성, 희망과 절망의 대치…. 이것이 21세기 초 한반도 풍운의 생생한 본질이다.

피랍자 가족들의 이성의 이야기, 희망의 징표부터 우선 돌아보자. “(반미 촛불집회가) 협상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될까 우려됩니다.” “가족들이 정치적으로 엮일까봐 걱정하고 있고, 그런 단체들과 함께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피랍자 가족 대표 차성민씨), “탈레반이 원하는 반미운동은 탈레반의 입지를 강화해 협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피랍자 가족 이정훈씨)….

육친애의 본능이라는 점에서 생각한다면 가족들의 절박한 심정에서는 이성적인 논란 여하 간에 미국 아니라 누구의 멱살이라도 휘어잡고 “탈레반 요구 무조건 들어줘라. 아니면 너 죽고 나 죽기다”라고 울부짖을 법도 한 일이지만 피랍자 가족들은 지금 그런 충동을 차분하게 차단하고 있다. 이런 그들의 비상한 이성적 역량에 대해 온국민은 전폭적인 성원과 격려를 보내야 할 것이다.

반면에 일부 정치인들의 언동은 어떤가? “우리 국민은 납치된 23명이 미국인이었다면 미국이 어떤 조치를 하고 행동했을지 묻고 있다”(정동영), “석방문제는 전적으로 미국의 의지에 달린 것이 엄연한 현실”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된 전제에 의한 전쟁이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국회의원 33명), “이번 사태는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서 출발했다. 미국은 이번 사태의 당사국”(천정배)….

그러나 미국은 ‘자기 손자’가 납치당하더라도 테러범과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고 있을 뿐 특별히 한국인이 납치당했기에 그런 원칙을 고수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석방문제 또한 ‘오로지 전적으로’ 미국의 의지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노무현의 청와대’까지도 시사한 바 있다. 국회의원 33명과 ‘천정배식(式) 관점’대로라면 먼저 선공(先攻)한 자보다 나중에 반격(反擊)한 자가 더 나쁘다는 식의 괴상한 억지가 횡행할 판이기도 하다. “6·25는 ‘통일전쟁’인데 공연히 미국이 막아서 분단이 고착됐다” 운운한 궤변가도 있었지만 ‘미국 책임론’이란 결국 미국이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잡아선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좌파’이기에 앞서 그런 반(反)이성, 억지투성이, ‘뻔뻔 생(生)’들인 셈이다. 이런 것을 두고 ‘진보’ ‘개혁’ ‘민족’ 운운하며 영합해 온 일부 먹물들의 ‘생계형 좌파 포퓰리즘’부터가 참으로 한심한 세태였다. 지식인들일수록 그래서 이제는 ‘8월 집중 호우도 미국 탓’이라는 식의 상투적인 쇼 한판에 밤낮 끌려만 갈 것이 아니라 자칭 ‘민주화 세력’이라는 ‘꾼’들에게 운동장을 가로채일 뻔했던 덕수초등학교 학부모와 어린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들도 결국 너절한 권력일 뿐…”이라고 정면으로 때리고 나가야 한다.

지난 세월이 정말로 ‘잃어버린 10년’이었다면 그것은 그런 돌팔이 구식 좌파에 대한 사회적 항체(抗體)가 너무 미약했다는 뜻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피랍자 가족들의 현명함과 덕수초등학교의 결연함에서 우리는 반(反)이성을 극복할 이성의 항체를 분명하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일부 다중(多重)인격적인 기회주의 ‘야당’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주지 못하는 희망의 단서는 바로 그런 데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