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말 한국 월드컵 대표팀 감독에 내정된 히딩크가 수석코치로 핌 베어벡을 지명했다. 베어벡은 일본 프로축구 2부리그 소속이던 NTT오미야의 감독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네덜란드 축구인이면서도 함께 일해본 적이 없었다. 베어벡이 중국과 일본 팀을 지도하고 홍콩축구협회 기술고문으로도 일해 아시아 축구에 이해가 깊다는 게 강점이라고 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히딩크에게 베어벡을 추천한 것은 네덜란드 축구협회였다. 히딩크처럼 강하고 튀는 성격의 사령탑을 보필하려면 베어벡같이 차분하고 유순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두 사람은 과연 궁합이 잘 맞았다. 베어벡은 절대 나서지 않고 묵묵히 히딩크 뒤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맡은 일만 했다. 당시 코치였던 정해성 제주유나이티드 감독은 베어벡을 보며 “코치의 역할이란 이런 것이구나” 깨달았다고 했다.

▶베어벡은 대표팀에서 별명이 ‘선생님’이었을 만큼 학구적이었다. 축구이론에 관한 한 히딩크보다 더 전문적이고 박식하다는 평을 받았다. 통역관은 그를 ‘사커홀릭(축구중독자)’이라고 불렀다.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축구 얘기만 한다. 외국 출장을 다녀와도 다른 재미난 얘기 하나 없이 거기서 본 경기와 선수 얘기만 한다.” 대표팀의 다양한 훈련프로그램이 전적으로 그의 노트에서 나왔다.

▶베어벡은 24세까지 네덜란드 스파르타로테르담에서 선수로 뛴 뒤 이 클럽의 청소년팀 감독이 되면서 일찌감치 지도자로 길을 바꿔 잡았다. 30대 중반에 페예노르트 감독대행을 거쳐 FC그로닝겐을 이끈 뒤 아시아로 건너왔다. 그가 작년 6월 국가대표 감독으로 ‘승진’되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가 적지 않았다. 말수가 적고 사교적이지도 않고 사람을 끄는 재주도 없어 지도자로서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베어벡이 어제 감독 계약기간을 1년 여 남긴 채 사퇴의사를 밝혔다. 아시안컵 6경기에서 3골밖에 못넣는 졸전 끝에 3위에 그친 직후다. 그는 현지 기자회견에서 “한국 팬들은 매우 경쟁적”이라고 말했다. 팬들의 기대가 너무 컸다는 뜻이다. 얼마 전 인터뷰에선 “난 내 방식이 있는 만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미 없는 만남이나 번드르르한 말 따위는 필요 없다”라고도 했다. 베어벡의 도중하차에선 그의 ‘비(非)한국적’ 성품 탓이 두드러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