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베이다 던포드(Dunford·캐나다·28)는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나뭇잎 모양의 금제 장식품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신기한 것이라도 발견한 것 같았다.

“이리 와보세요. 이게 그냥 연꽃 무늬만 새겨진 게 아니네요. 여기 연꽃이 갓 피어나는 것처럼 퍼져나가는 중간에 보면 아이 모습이 있어요. 그 위에는 새가 날고 있고…. 그 옆에 있는 것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 같은데요.”

루베이다 곁에 서있던 이한상 동양대 문화재학과 교수의 설명.

▲ 루베이다 던포드가 10일 이한상 동양대 교수와 함께 서울역사박물관에서‘중국 국보전’을 관람하고 있다.

“5살 때 중국의 한족과 정략결혼했다가 10대도 넘기지 못하고 그만 병으로 죽은 중국 북방 민족의 딸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이죠. 당시 사람들이 바라던 대로, 연꽃에서 다시 태어나길 기원하는 의미로 이런 부장품을 넣었죠.”

앙증맞은 유물에 깃든 슬픈 사연에 루베이다는 “어머, 어떻게…”라며 한숨을 쉬었다.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 루베이다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중국 국보전’을 찾았다. 홍콩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많이 살아 ‘홍쿠버’라고도 불리는 캐나다 밴쿠버 출신인 그녀는 “중국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중국 문화와 역사를 직접 느껴보기는 처음”이라며 2000년의 풍상에도 마멸되지 않고 빛을 발하는 전시물들의 화려한 색채와 정교함에 감탄사를 터뜨렸다.

▲ 사람 얼굴에 짐승 몸체를 한,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진묘수(鎭墓獸)라고 부른다. 높이 32㎝.

한(서기전 206~서기 220년)과 서역과 교류가 활발했던 당(서기 618~907년)의 유물이 중심인 이번 전시회. 캐나다에서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다 충동적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루베이다는 아득한 옛날, 동양과 서양이 교류했던 흔적들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

북위 시대의 유물을 둘러보던 루베이다는 동시대 유물인데도 조각상의 얼굴이 확연히 다른 ‘채색한 서커스 인물상’을 보고 “이 사람들은 중국 사람 아니죠?”라고 물었다. 이 교수는 “당시 중국에 살던 중앙아시아인들”이라며 “당시 중국인들은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중앙아시아 출신 미인들에게 반했고, 이 때문에 당시는 중앙아시아인들이 운영하던 술집이 유행이었다”고 말했다.

‘채색한 진묘수’라는 제목이 붙은 조각상은 얼굴은 사람인데, 몸통은 동물이다. 루베이다는 “그리스 시대 유물에도 저런 조각들이 많다”며 “아직도 한국 등 동양은 나에게 낯선 면이 많은데 고대 사람들이 서로 비슷한 모양을 상상했다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고대 중국여인상 앞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고대 중국에서는 최고로 ‘잘 나갔던’ 여성들. 입술은 앙다문 듯하고, 볼은 통통해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얼굴. 루베이다는 “그런데도 얼굴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렸을 뿐 아니라 밋밋하게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엉덩이도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조금 밀어낸 모습은 영락없는 모델 자세 같다”며 깔깔댔다. 그러나 “당시 정말 잘나가던 미인들은 목에 주름도 있어야 했다”는 설명을 듣고는 “그건 아닌 거 같은데…”라며 손을 내저었다.

오후 1시에 입장했는데 나온 시간은 오후 2시30분. 어느새 우산이 없으면 다니기 힘들 정도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급변한다”고 하자 루베이다는 “박물관에서 밀레니엄(1000년)을 보냈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러곤 특유의 농담을 던졌다. “나이 들어 살이 찐다고 누가 놀리면 이젠 ‘중국식 미인’이 돼 간다고 말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