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논설실장

주식 시장이 뜨거운 화제다. 일부 언론이 초등학생까지 증시에 뛰어들었다고 흥분하더니, 곧이어 정부가 급제동을 걸었다. 대통령이 기대 주가 지수 1500까지 거론하며 과열을 거론한 후, 총리까지 나서 냉각수를 끼얹는 발언을 했다.

정부가 증권회사 창구에서 신용 융자를 금지시키고 돈 줄을 조이는 호들갑 조치를 보면 한국 경제는 아직 갈 길이 멀고 멀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샐러리맨들마저 위험을 무릅쓴 채 주식-부동산 펀드에 가입하고 해외 투자에 뛰어드는 판에, 오로지 대통령과 공무원들만 5공(共)-6공 군부독재 시대에 머물러 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글로벌 머니 마켓(Money market)의 흐름과는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대통령의 만용과, “대통령이 주가나 환율, 금리에 관해 언급하면 곤란합니다”는 한마디 못하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공무원들의 무지(無知)다. 바로 이것이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화(Globalization)의 상징적인 증상을 몇 가지 꼽는다. 어떤 전문가는 국가 간 빈부 격차가 커지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하고, 미국의 룰이 모든 나라에 강요되는 미국화(化) 현상을 비판하는 세력도 있다.

하지만 가장 뚜렷한 세계화 증상 중 하나는 돈의 흐름, 투자 자금의 방향에 따라 나라 경제의 승패가 갈리는 세상이 됐다는 점이다. 요즘 유행하는 시중 언어로 말하자면 글로벌 규모로 펼쳐지는 ‘쩐의 전쟁’이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를 갈라놓고 있다는 얘기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금융업은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한 나라 경제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폭탄급 산업으로 등장한 것은 최근 10여 년 사이다. 세계화 추세와 정보기술(IT)의 발전 덕분에 미국-영국 같은 금융 제국(帝國)이 등장했다는 데 많은 전문가들은 동의한다.

몇 가지 사례를 생각해보자. 2년여 전 미국 연방준비이사회(FRB)의 버냉키 의장이 버지니아 경제학자 모임에서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매년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무역수자 적자는 ‘개 꼬리(Dog’s tail)’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중국-인도에서 엄청난 소비재를 수입하면서 수출 실적은 올라가지 않는데도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 없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럼 개의 머리와 몸통에 해당하는 알짜는 무엇일까. 바로 금융업이다. 해외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펀드나 투자회사, 은행들이 미국에는 많기 때문에 미국의 호황 국면은 지속되고 있다. 머니 게임에서 무역 적자를 메우고도 남는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확실히 세계는 변해버렸다. 전 세계 상품의 무역 거래가 연간 9조3000억 달러(2004년 기준)라면 금융 거래 액수는 그보다 83배에 달하는 지경이다. 런던의 집값을 점치려면 주택 수요-공급 전망만으로는 판단이 안 선다. 그보다는 중동의 오일 달러가 얼마큼 더 들어올지 들여다보는 작업이 훨씬 중요해졌다고 한다.

서울 증시도 상장 회사의 실적 전망치보다는 뉴욕 증시의 흐름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과거에는 실물 경제가 머리이고 금융은 실물의 흐름을 따라가는 꼬리 역할을 해왔다면, 지금은 금융이 머리이자 몸통이고 실물은 꼬리로 뒤바뀌었다.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선진국일수록 금융업에 온 정성을 쏟고, 머리 좋은 수재들이 그곳에 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고 호황을 누리는 국내의 어느 조선회사 임원은 한탄했다. “1억 달러짜리 대형 선박을 수주해 3년간 수천 명의 기술자들이 땀 흘려 수출하면 500만 달러나 600만 달러 정도 남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금융기관은 선박 건조 자금을 1억 달러 빌려주고 단번에 엇비슷한 금액을 벌어갑니다.”

한국 정부와 언론은 촌티를 벗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큰돈이 어디서 어디로 굴러다니는지 모르는 비전문가들이 증시에 헌 칼을 휘두른다고 통하는 세상이 아니다. 초등학생의 주식 투자까지 걱정해줄 필요가 없다. 미국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동아리를 만들어 주식 모의 투자를 하고, 지역 학교끼리 벌이는 투자 수익률 경쟁 순위가 매주 워싱턴 포스트에 보도되기도 한다.

우리는 세계 11위 무역대국이라고 뽐내며 언제까지 강아지 꼬리나 붙잡고 있을 것인가. 나라 경제를 위해서는 글로벌 머니 게임의 검투사(劍鬪士)들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