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사는 이지인(6)양은 밥보다 사탕을 많이 먹는다. 엄마가 아무리 밥과 반찬을 먹이려고 해도 유아용 수저로 2~3숟갈 먹고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가 아이를 떼어 놓고 다니는 게 마음에 걸려 2년 전부터 퇴근길에 사다 준 막대사탕이 이양의 혀를 중독시켜 버렸다. 이양은 막대사탕만 하루 6~7개씩 먹는다. 단맛에 길들여진 이양은 끼니도 밥 대신 과자나 탄산음료로 때운다. 엄마는 이양의 입맛을 바꾸려고 수차례 굶기기도 해봤지만 실패했다.

대구에 사는 유동호(4)군은 하루 세 끼 전지(全脂)분유만 먹으려 한다. 식사 메뉴에 전지분유가 빠지면 소리를 지르며 운다. 엄마가 만들어준 이유식은 “맛이 없다”며 숟가락도 들지 않는다. 유군의 엄마는 “유아용 조제분유를 잘 먹길래 3살 때까지 계속 먹인 게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단것만 먹는 아이들

단것에 중독된 아이들이 늘고 있다. 젖이나 우유를 떼는 이유기에 밥 대신 사탕, 케이크, 아이스크림 같은 단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진 이후 단것을 입에 넣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불안해하는 어린이가 많다.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학생건강클리닉의 김덕곤 교수는 “하루에 찾아오는 어린이 환자 100여명 중 40~50%가 식욕부진을 호소하는데, 원인을 캐보면 인스턴트 식품이나 과자, 탄산음료 등 단것을 너무 먹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강남함소아한의원 김정열 원장은 “10년 전만 해도 입맛 문제로 상담하는 어린이는 거의 없었는데 최근엔 하루에 10여명 정도가 단것만 먹는 식습관을 고치기 위해 찾아온다”고 말했다. 분당의 한 소아과 의원에서 임상영양사로 일하는 박미녀씨도 “하루 10여명의 아이들이 단것 때문에 영양상담을 받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단것만 찾는 아이들이 급증한 원인을 주로 부모들에게서 찾는다. 생후 4~5개월쯤 이유식을 시작할 때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아이들 입맛이 결정되는데, 맞벌이가 늘면서 바빠진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달고 부드러운 음식을 사서 먹이다 보니 아이들의 혀가 단맛에 길들여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박미녀 영양사는 “단맛만 찾는 것은 끊기 어려운 심각한 중독 증세”라며 “아기 때부터 먹는 분유를 비롯해 이유식, 요구르트, 건강젤리까지 요즘 아이들은 단맛 일색인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영양 불균형에 성격도 나빠져

단것을 너무 많이 먹으면 영양 불균형으로 발육에 나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아이들의 성격도 나빠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정모(여·56)씨는 회사원인 딸을 대신해 손자(3)를 키우고 있다. 그런데 손자가 툭하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마구 집어 던져 걱정이 태산이다.

정씨는 “얼마 전 병원에 데려갔더니 단것을 너무 많이 먹이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김덕곤 교수는 “단 걸 많이 먹으면 밥맛이 없어지고 체력이 약해지니까 신경질과 짜증이 심해진다”며 “단것만 먹는 아이들은 대체로 잔병치레가 잦고, 식은땀을 많이 흘리며, 화를 잘 내는 증세를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단것을 너무 많이 먹는 아이들은 주의력이 떨어질 수 있다.

박 영양사는 “과다한 당분은 무기질이 몸에 흡수되는 걸 방해하고 신경계를 교란시킨다”면서 “무기질 중 하나인 칼슘이 부족하면 주의력이 떨어지고, 아연이 모자라면 성장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강남함소아한의원 김정열 원장은 “당분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피부와 폐를 건조하게 만들고 체질을 알레르기화해서 아토피에 쉽게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단맛 중독을 피하려면

전문가들은 생후 4~5개월쯤 이유식을 시작할 때 첫 음식으로 단것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쌀 미음을 3~4일 정도 먹여서 적응하면 양배추, 애호박, 브로콜리, 시금치 등 비교적 순한 채소를 3일 정도 먹이고, 과일처럼 단맛 나는 음식은 맨 마지막에 줘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미 단맛에 중독된 3~4살짜리 아이의 입맛을 바꾸려면 상당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과자나 사탕 대신 꿀 바른 누룽지 같은 음식을,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 대신 수박·파인애플 등 과일 얼린 것을 주면서 점차 입맛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법이 있다고 김정열 원장은 말했다.

이와 함께 심리적인 자극을 병행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사탕을 즐겨 먹던 현아(여·4·서울 청담동)는 지난달 집 근처 치과에서 단것을 많이 먹으면 충치에 걸려 아무것도 못 먹게 된다는 내용의 인형극을 본 뒤 사탕을 쉽게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