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鄭東泳)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1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범여권의 대(大)통합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선 출마의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대선 출마 문제까지 범여권을 하나로 묶는 작업의 성패에 걸겠다는 얘기다. 이날 오후 서울 강남 교보문고 인근 식당에서 2시간 가량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가 자신의 신간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를’ 팬 사인회를 마친 직후였다.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으로서, 당이 해체 위기에까지 몰린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남의 탓을 하고 싶진 않다. 정치인 정동영의 책임을 가장 무겁게 생각한다. 대북송금특검, 대연정, 코드 인사, 적대적 언론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못한 것을 내 스스로 4대 과오라고 부른다.”

―왜 못했나.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6월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통일부 장관직을 던졌어야 했다. 그때 나는 평양을 다녀온 직후였다. 내 나름으론 ‘제2의 6·15(남북정상회담) 시대’를 열겠다는 열정을 갖고 헌신했다. 그러나 여기에 공개 반대하는 것이 당과 정부, 대통령과 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됐었을 것이다. 뒤늦게 깨달았다.”

―정 전 의장도 곧 탈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미 결심은 섰다.”

―그러나 창당 주역인 만큼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이번 대선에서 승부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지난 2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당의 정치적 해체와 대통합’을 결의했다. 그 명령에 충실하는 것이 정당인의 제1원칙이다.”

―정 전 의장이 말하는 대통합은 무엇인가.

“뿔뿔이 흩어진 민주개혁 세력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분화(分化)하고 왼쪽에는 시민사회, 오른쪽에는 민주당 세력과 통합하는 것이다.”

―얼마 전 범여권 대통합이 없으면 ‘한국 정치가 일대 위기를 맞는다’라고 했는데 무슨 근거인가.

“지난 60년간 역대 대선은 양당 후보 간 대결이었다. 그런 한국 정치현대사의 전통과 흐름이 붕괴할 수도 있고, 이는 한국정치의 위기라고 본다. 대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동영은 출마할 이유가 없다.”

―대통합에 실패하면 대선 불출마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그럴 각오로 임하고 있다”

―친노(親盧) 진영도 대통합의 대상인가.

“그 사람들의 주장은 열린우리당 사수론이었다. 판단은 그 사람들의 몫이나, 누구도 배제해선 안 된다.”

―노 대통령은 정 전 의장 등 여권 대선주자들이 자신과의 차별화를 통해 인기를 얻으려 한다고 비판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이미 정책적 공과(功過)에 대해선 책임을 떠안고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노무현식 정치’는 하지 않겠다. 지금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평가포럼’ 같은 ‘예스맨’들만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수첩을 꺼내 들고, 2008년 출범하는 새 정부의 성격에 대해 �품격있는 정부 �현장형 정부 �디지털 경제 �사람에 투자하는 국가 등 4가지를 얘기했다. 최근 부쩍 잦아진 노 대통령의 ‘정치 발언’에 대해 “적절치 않다”며 “다음 정부는 리더십의 품격이 중요하다”고 했다. 경제 문제만 나오면 노 대통령이 “거시 지표가 좋다”고 주장하는 것을 겨냥해 “IMF 외환위기 때 펀더멘털(기초)이 좋다고 하는 것과 똑같은 주장”이라며 “이 정부의 약점은 현장에서 떨어져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선악(善惡)의 개념에서 보는 것 같다.

“국민이 선택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긴 하다. 그러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자신의 전성기였던 1960~70년대 사고에 머물러 있다. 박근혜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이 전 시장이 신혼부부에게 아파트 한 채씩 지어주겠다고 했는데, 대단히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적이다. 한국 사회의 유전자(DNA)는 1970년대식 사고와 맞지 않는다. ‘삽질’하던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21세기를 이끌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얼마 전 한나라당 의원이 정 전 의장 측이 ‘이명박 X 파일’을 갖고 있다고 말했는데….

“왜 나를 끌어들이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강한 의구심은 있다. 이 전 시장은 기업 오너가 아니라 월급쟁이였다. 같은 당내에서조차 재산이 8000억원대에 이른다는 주장이 나온다면 당연히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은.

“점점 어려워져 가는 분위기이다. 정상회담의 가능성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어 대단히 안타깝다.”

방송 기자 출신인 정 전 의장은 노 대통령의 ‘적대적 언론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권도, 언론도, 국민도 모두 손해를 봤다”고 했다. 그는 “나도 바르게 기자 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라며 “언론의 일은 언론에 맡기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