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1813~1883)의 마지막 오페라 ‘파르지팔(Parsifal)’이 내년 4월에 한국 초연된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 ‘로엔그린’에 이어, 지난 2005년 명 지휘자 게르기예프가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을 이끌고 왔던 ‘니벨룽의 반지’까지 바그너의 주요 작품이 한국에서 공연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지막 관문이 열리는 셈이다.

바그너 오페라 전용 극장인 독일 바이로이트 초연 이후 무려 126년 만의 ‘지각 상륙’이기도 하다. 작곡가는 생전에 “이 작품을 공연할 무대는 바이로이트 극장밖에 없다”며 ‘외부 유출’을 금하기도 했다.

이번 ‘한국 유출 사건’은 바그너의 성지(聖地)인 독일 바이로이트 극장과 한국 예술의전당의 ‘공동 작품’이다. 바그너의 손자인 볼프강 바그너가 1989년부터 2001년까지 바이로이트 극장 무대에 올렸던 프로덕션을 공수한다. 볼프강 바그너의 딸이자 작곡가 바그너의 증손녀인 카타리나 바그너(Katharina Wagner)는 한국 리바이벌 무대의 재연출을 맡는다.

파르지팔’한국 공연의 연출을 맡은 카타리나 바그너. 예술의전당 제공

한국 초연을 꼭 1년 앞두고 11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카타리나는 서글서글한 독일 미인 형으로 이목을 끌었다. 카타리나는 “증조부에 대해서는 전기(傳記)를 통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지만, 외모는 닮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물려받은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바그너의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과 증오, 종교와 구원 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의 한국 관객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카타리나는 29세에 불과하지만 바그너 가문의 ‘후광(後光)’을 바탕으로, 일약 올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의 연출을 거머쥐었다.

한국에서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누비고 있는 베이스 연광철을 비롯해 사무엘 윤(베이스 바리톤), 김재형(테너), 정록기(바리톤) 등이 무대에 선다. 오페라 지휘자로 유명한 베르트랑 드 빌리(Bertrand De Billy)가 지휘를 맡을 예정이다. 바그너 음악 팬으로서는 2008년 바이로이트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파르지팔’의 구르네만츠 역을 맡는 연광철의 모습을 미리 볼 수 있는 기회다.

작품은 백치(白痴)에 가까울 정도로 순진무구한 기사 파르지팔이 성배(聖杯)를 찾는 과정을 배경으로 화해와 구원을 다루고 있다. 독일 오페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바그너 자신이 ‘성극(聖劇)’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기독교적 함의를 바탕에 담고 있다. 평생 바그너를 숭배했던 철학자 니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거꾸러졌다”고 비난하며 결별을 선언하는 계기가 됐지만, 작곡가를 경외(敬畏)하는 ‘바그네리안(바그너 애호가)’들은 지금도 이 작품이 공연될 때면 막간에 박수를 치지 않을 정도로 성스럽게 여긴다.

전체 3막의 순수 공연 시간만 4시간에 이르는 데다, 바이로이트에서는 막 중간마다 1시간씩 쉬기 때문에 휴식 시간을 합쳐 전체 공연 시간은 6시간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오후 4시쯤 막이 올라도 밤 10시에 이르러서야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공연도 전체 3회 공연 가운데 2회를 주말 낮에 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