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혁명은 문학을 근본적으로 새로운 좌표 위에 위치시켰다.

이제까지 문학 작품은 현실을 재현한 가상, 즉 상상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디지털 미디어 기술에 의해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이 만드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 환경으로서의 가상 세계가 나타나면서 가상은 곧 현실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가상은 사람들이 마우스로 클릭해주기를 기다리는 대기상태의 현실, 잠재능력을 가진 현실이 된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오늘날에는 판타지문학도, SF문학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어스시의 마법사’ ‘듄’ ‘유배행성’ ‘로캐넌의 세계’는 새로운 현실을 그리고 있는 현대문학일 뿐이다. 그 반대편에 대학에서 가르치는 ‘현대문학’, 즉 1990년대 이전까지의 현실 개념에 따라 문학을 이해하는 근대문학이 있다.

대한민국 뉴 웨이브 문학상은 한국 사회가 문학의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인식했다는 징후이다. 문학상의 취지처럼 이제까지 서로 다른 문화라고 알고 있었던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이 통섭하고 융합하여 새로운 현실을 그리는 진짜 현대문학으로 갱신된다면 떠났던 독자들은 되돌아오고 문학의 위기는 어제의 풍문이 될 것이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에서 시작된 융합(convergence) 현상은 고도화되고 일상화되었다. 컨버전스는 단순히 기기나 서비스가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매체, 네트워크, 문화들이 자기 존재를 부정하고 타자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것으로 부활하는, 존재 혁신을 통한 가치의 혁명이다.

오늘날 ‘세컨드 라이프’처럼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해 이루어지는 초국적 디지털 생태계는 영어와 컴퓨터 언어라는 표준화된 공용 수단을 매개로 보편적인 인류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셸 위나 하인스 워드, 다니엘 헤니 같은 국가복합적 아이콘들이 문화의 전면에 부각되었다. 이 같은 초(超)지역성은 국지적인 엘리트 집단이 주도하던 문화를 해체하고 재편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다.

한국문학은 이러한 변화에 새 물결을 일으키며 적극적으로 응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와 반도체, TFT, LCD 분야의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온라인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콘텐트를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는 아시아의 권역 중심 국가이다. 문화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문학 창작이 계속 근대문학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한국 문학의 발전은 심각한 위기와 성장 한계를 맞게 될 것이다.

한국에는 아직 ‘뉴로맨서’를 써서 사이버스페이스 문제를 최초로 형상화한 윌리엄 깁슨 같은 작가도 없고, ‘툴네임즈’를 써서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CMC) 문제를 최초로 형상화한 버너 빈지 같은 작가도 없다. ‘공각기동대’ 같은 작품으로 가상공간의 자아정체성을 탐구하는 오시이 마모루 같은 감독도 없고 ‘다중’을 써서 정보사회의 근본적인 정치적 변혁을 모색하는 안토니오 네그리 같은 학자도 없다.

이처럼 기술 지식만 세계 수준으로 축적되었을 뿐 그 지식을 이용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이 없다면 영원히 한국의 미래는 없다. 뉴 웨이브 문학상은 정보 혁명의 격랑과 정체된 문화 현실을 넘어 미래로 던지는 한국 문학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