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Cliche)는 “판에 박은 듯한 문구”, “진부한 표현”을 말한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이 문학용어는 드라마, 영화에도 해당된다. 특히 삼각관계가 기본 축이 되는 ‘멜로’의 경우, 클리셰가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장르이다. 직접 작품을 쓰는 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한국의 유명 드라마 작가 7명이 털어놓은 ‘한국 드라마의 7가지 법칙’.

1. 옥상 위 멋진 풍경은 덤… "달동네 사라져도 계속"

90년대 후반부터 옥탑방에 사는 서민형 주인공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옥탑방보다 반지하에 사는 서민이 훨씬 많다. 달동네가 사라지면서 서울의 옥탑방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 그래도 옥탑방 설정이 계속되는 건, 시각적 효과 때문이다. 반지하에서는 카메라 움직임에 한계가 있는 반면, 옥탑방은 옥상 위로 펼쳐지는 멋진 '풍경'까지 덤. 드라마 '꽃피는 봄이 오면', '열아홉 순정' 등.



2. 바람난 남편 때문에 눈물짓던 아줌마, 대박 사업가로

최근 '아줌마 성공기'를 다룬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클리셰. 바람난 남편 때문에 눈물 흘리던 '곰' 같은 아줌마 주인공들은 작은 식당 또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다가 빼어난 음식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홈쇼핑에 진출, '대박' 사업가로 거듭난다. 아줌마가 방송사 주최 요리 경연대회에 참가해 우승한다는 설정도 비슷한 줄기다. 협찬사의 PPL(간접광고)이 용이하다는 점도 이 설정이 애용되는 이유. 때로 서로 다른 두 드라마가 유사한 설정에 음식까지 비슷하게 쓰는 경우도 있다. '두번째 프러포즈'가 원조 대접을 받고 있다.

3. 아내 vs 남편의 애인… '물 뿌리기' 정도면 OK?

부인과 남편의 정부(情婦)가 카페에서 대면하면 대부분 아내가 컵에 담긴 물을 정부의 얼굴에 쏟아 붓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도 하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 폭력적 상황은 과하고 말싸움만으로는 부족하니 사용되기 시작한, '중용(中庸)'의 묘를 살린 클리셰. 요즘은 애인 사이에도 카페에서 다툼 끝에 한쪽이 다른 쪽의 얼굴에 물을 뿌리는 장면이 늘고 있다.

4. 한 여자를 둔 실장님들은 '브리핑 배틀'로 승부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하는 두 명의 능력 있는 남자 주인공들(주로 '실장님'이다)은 대체로 사내 고위 간부 또는 외부 인사들을 앉혀 놓고 브리핑 대결을 펼치며 승부를 가른다. 빔 프로젝터를 활용한 화려한 브리핑 장면에 이어, 사장쯤 되는 인물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인상을 구기는 장면이 따라붙는다. 사랑과 성공, 멜로 드라마의 두 가지 축이 교차되는 지점.



5. 주인공의 대답은 언제나 "나다운게 뭔데"

한동안, 한국 드라마를 휩쓸었던 대사 클리셰. 극심한 심경의 변화를 보이는 주인공에게 단짝 친구가 주로 던지는 말이 "도대체 너답지 않게 왜 이래?"다. 그럴 때, 주인공이 받아치는 대답은 딱 한 가지. "나다운 게 뭔데?" 그러나 최근에는 작가들 사이에서 '자성'의 기운이 확산되며 기피 대사로 꼽힌다. 여전히 신인 작가들 습작에는 자주 등장한다.



6. "그래 결심했어" 일단 핸들부터 돌려

심적 동요 속에 운전을 하던 주인공이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면 반드시 '불법 유턴'을 한다. 마침, 중앙선 너머 차선에는 지나가는 차가 없지만, 혹시 한 대라도 있다면 대형 사고가 확실하다. 마음이 180도 바뀌었다는 사실을 '그림'으로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 애용되는 클리셰.



7. 가련한 여주인공, 부잣집 도련님을 만나다

가난하지만 꿈을 간직한 당당한 여주인공은 도서관에서 책이 바뀌거나 옷에 와인이나 커피를 쏟는 등 자잘한 사고로 부잣집 도련님을 만난다. 가난한 여자 주인공보다 모든 조건이 나은 연적(戀敵)이 등장하는데, 남자의 옛 애인이거나, 남자의 부모가 적극 밀어주는 여인으로 성격이 더러운 편. 당연히 상류층이며, 해외유학파인 경우가 많다.


◆설문에 참여한 드라마 작가들

김영현('대장금' ), 김인영( '결혼하고 싶은 여자'), 김혜린('모정의 강'), 박은령( '두 번째 프러포즈'), 박정란('행복한 여자' ), 유정수('제5공화국'), 이기원('하얀거탑') 가나다순, 괄호 안은 대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