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도쿄특파원.

일본에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란 엘리트 출신 정치가가 있다. 도쿄대 법대, 대장성 관료를 거친 뒤 고이즈미 내각에서 문부과학상을 지냈다. 우리에겐 ‘망언꾼’으로 유명하다. 그가 문부상이던 2년 전 이런 발언을 했다.

“원래 ‘종군위안부’란 말이 그(전쟁) 당시에 없었다. 없었던 말이 역사 교과서에 나오고 있다. 틀린 것이 교과서에 실렸다. 이게(교과서 기술이) 없어져서 좋다고 평가했다.”

워낙 말 같지 않은 말이라 역설적으로 파문도 크지 않았다. 당시 일본군은 이들을 ‘작부(酌婦)’ ‘종업부(從業婦)’ ‘추업부(醜業婦)’ 등으로 불렀으니 ‘종군위안부’는 애당초 없다는 황당한 논리를 편 것이다. 예전에 인기를 끈 “영구 없다”는 코미디 장면이 떠오른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코미디가 아니란 느낌을 준다.

여성을 성노예로 끌고 간 강제 연행을 ‘협의(狹義)’와 ‘광의(廣義)’란 논리로 애써 둘로 나누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주장도 그렇다. ‘협의의 강제성’이란 “관헌(官憲)이 집에 쳐들어가 (여성을) 유괴하듯이 끌고 가는 것”, ‘광의의 강제성’이란 “(민간) 업자가 사실상 강제한 사례를 포함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위안부에 몰린 것”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곤 ‘협의의 강제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으니 “일본군의 강제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협의의 강제성’을 입증할 수많은 피해자 증언이 있다. 미국 하원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의 문구도 이들의 증언에 기초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 총리는 이번엔 “증거 없는 증언”이니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스스로 지워버린 가해자의 증거를 피해자에게 내놓으라는 것이다. 일본군의 지시를 받은 민간업자의 강제는 강제가 아니라는 논리는 또 무엇인가.

이쯤 되면 왜 우리가 일본을 향해 양식(良識)을 호소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이유부터 자문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그것은 결국 따지고 들어가면 지금 북한보다 훨씬 지독한 ‘깡패국가’였던 전전(戰前) 일본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부탁이다. 이웃나라로부터 지긋지긋한 피해를 경험하지 않은 입장에선 아마 한국인의 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또 일본이 ‘저질국가’로 분류하는 북한과 비교되는 것에 무척 기분 나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2차대전의 도화선이 된 장쭤린(張作霖) 폭살사건, 류타오후(柳條湖) 철도 폭파사건처럼 스스로 저지른 전쟁 범죄의 증거를 인멸하고 중국 탓으로 돌린 뒤 “복수를 하자”며 온 국민이 집단 최면에 빠져든 나라가 일본이다. 하물며 일본군 위안부 자료인들 온전히 간직했을까. 이런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증거가 없으니 사실이 아니다’는 집단 최면에 또다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우려한다.

망언꾼 나카야마는 지금 ‘고노(河野)담화’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려는 일본 정계의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 회장이다. 고노담화는 여성에 대한 강제 연행에 일본군의 개입을 인정한 1993년 일본 정부 발표를 말한다. 이런 나카야마의 아내는 아베 총리의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 보좌관을 맡고 있다. 아베 총리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는 일본 정부의 실세(實勢)다.

남편은 제 나라의 납치 범죄를 열심히 부인하고, 아내는 북한의 납치 범죄를 열심히 세상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율배반이 지금 세상에 비치는 일본의 모습이다. 일본 지도층만 모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