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2월 15일 오후 7시 서울 종로 YMCA 대강당에서 新幹會신간회 創立大會창립대회가 열렸다. 이날 대회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200여 명의 민족주의·사회주의 운동 지도자와 방청객 등 1000여 명이 참석했다. 1910년 무력으로 강압된 한일합방 조약에 의해 國權국권을 상실한 이후 최대의 민족운동단체가 결성된 것이다. 오늘은 신간회 창립 80주년을 맞는 날이다.

신간회의 '신간'은 '古木新幹고목신간'(오래된 나무의 새 줄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조선을 새롭게 하자는 뜻을 담았다. 신간회의 목표는 日帝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민족이 단합해 스스로의 힘으로 민족 역량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었다. 이런 정신은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진함' '단결을 공고히 함' '기회주의를 일체 否認부인함'이라는 綱領강령에 잘 나타나 있다.

신간회가 발족한 이후 순식간에 전국 각지에 140여 支會지회가 만들어졌고 회원이 4만 명에 이르렀다. 당시 인구가 2000만 명이 안됐고 교육받은 사람이 많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이 땅의 지식인은 거의 모두 참여했다고 할 수 있다. 신간회의 전국 조직은 각지에서 夜學야학과 연설회를 열어 대중의 의식을 높이고 小作權소작권 보호, 노동조건과 임금의 차별 철폐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1929년 광주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전국적으로 알리고 확산시키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념·지역·세대로 나뉘어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민족적·시대적 과제였던 독립과 민족역량 강화에 左右좌우가 힘을 합친 80년 전 신간회의 정신이 더욱 소중한 상황이다. 신간회가 품었던 그때 그 꿈은 독립과 건국·산업화·민주화를 통해 하나씩 달성됐고, 이제 강력한 경제와 국민적·국가적 品格품격을 함께 갖춘 선진통일한국 건설이라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선진통일국가'라는 민족적 과제 해결을 위해서 다시 한번 국민적 力量역량을 모을 때다.

15일 신간회 주역들의 후손과 기념사업회들이 모여 신간회기념사업회를 發足발족하는 것도 이 민족적 과제의 莫重막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신간회기념사업회는 창립취지문에서 "신간회의 비전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의 번영과 안전, 창조적 혁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1927년 신간회 창립대회에선 李商在이상재 조선일보 사장이 회장, 安在鴻안재홍 주필이 총무간사로 선출됐고, 발기인 34명 중에 조선일보 간부가 12명이나 들어 있다. 조선일보는 '신간회 機關紙기관지'로 불렸을 정도로 신간회 활동을 상세히 보도했으며 조선일보 지사·지국은 신간회 지회를 겸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80년 전 신간회가 스러져가던 민족 정신에 불을 댕겨 민족의 역량을 자주독립국가 건설에 결집시켰듯이 '제2 신간회 운동'이 우리 모두가 政派정파나 정치적 신념 차이를 넘어 선진통일한국 건설의 길에서 다시 만날 계기를 만들어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