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글렌(Jerome Glenn·60) 유엔미래포럼 회장 겸 세계미래연구기구협의회 회장의 미래 묘사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 년 뒤를 다녀오기나 한 듯 구체적이고 생생했다. 그는 “20년쯤 지나면 모든 사람은 특수 콘택트렌즈와 특수 의복을 통해 24시간 사이버 세상과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4시간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연결된다는 뜻에서 이 장비들을 ‘사이버 나우(Cyber Now)’라고 이름 붙였다. 사람들이 ‘사이버 나우’를 통해 원거리 교육을 받고, 원거리 의료 검진을 받으며, 원거리 직장을 다니는, ‘시공간(時空間) 초월의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사람들은 인터넷이 지구촌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불러왔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론 ‘가상(假想)현실’이 이를 초월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24시간 사이버 공간에 연결된다는 의미는?

“몸속에 초소형 컴퓨터를 집어넣고 하루 종일 인터넷을 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사이버 공간에 접속한다. 3차원 정보 속으로 다이빙하고 데이터 사이를 헤엄쳐 필요한 것을 줌인(zoom-in) 해서 들어간다. 그곳엔 인간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AI(인공지능)가 있다. AI는 당신에게 하루 일정을 얘기해 주는 것으로 시작해, 밤에 잠들 때까지 계속 대화를 청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가상 현실로 구현된다.”(그는 가상현실이 입체적인 홀로그램 형태로 존재할 것이라고 묘사했다)

―가상현실엔 어떻게 접속하나?

“특수 장비를 이용한다. 나는 이 장비를 ‘사이버 나우’라고 부른다. 피부에 이식될 수도 있고, 옷이나 안경처럼 착용할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콘택트 렌즈 형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2015년엔 인류의 10% 정도만 ‘사이버 나우’를 착용하지만, 2025년이면 공짜로 배포돼 대부분 인류가 가상 공간에 상시 접속하게 될 것이다.”

그는 이 가상현실 프로그램은 전 세계 정부와 대학, NGO(비정부 단체), 기업들이 참가하는 초(超)국가 기구에 의해 관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가난한 나라의 외딴 마을까지 혜택이 돌아가 지구촌 전체의 부(富)가 향상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어떤 방식으로?

“AI는 계속 우리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 준다. ‘오늘은 혈압이 좀 높으니 아침 운동은 무리입니다’라는 식으로 경고를 준다. 당신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갑자기 높아진다면 AI는 스테이크를 두 조각에서 한 조각으로 줄이라고 조언한다. 이 같은 모든 건강 정보는 보험회사로 넘어간다. 건강 프로그램의 관리비용을 보험회사가 지급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옷에 더러운 것이 묻으면 ‘지금 씻어, 더러워’라고 알려준다. 집안에도 AI가 이식돼 있어, 습도·온도 조절을 저절로 한다. 특히 교육에 혁명을 가져온다.”

―교육 혁명이라면?

“모든 교육은 게임의 일종으로 진행된다. 레저와 일, 공부의 경계가 없어진다. 예를 들면, 과학시간엔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가상현실에 접속, 진화 게임을 통해 지구의 역사를 배운다. 직접 화학 실험을 할 수도 있다. 가장 훌륭한 전략을 갖고 실험을 완성한 학생이 장학금을 받고 기업에 채용된다. 학생들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최신 과학기술을 배우며 전문가들과 대화를 통해 최신 기술의 문제점을 함께 해결하기도 한다. 빈 컵에 차를 부어 채우는 것 같은 지금의 일방통행식 교육은 사라진다.”

―그렇다면 학교나 교사의 존재는 어떻게 되나.

“학교는 영국 왕실처럼 상징적인 존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학생들이 교육 프로그램에 접속해 무엇을 배우는 곳이라면 모두 학교가 될 수 있다. 미래 교육의 핵심은 ‘실시간 교육’과 ‘맞춤형 교육’이다. 인간 교사는 실시간으로 질문에 방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고, 일대일 교육이 힘들다. 결국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개별 인간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 내는 것)으로 갈 수밖에 없다.”

―미래 사회는 정보 과잉 아닌가?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

“가상현실과 인간은 주고받는, 상호 작용 관계다. 당신의 뇌에서 정보를 다 소화하지 못한다는 신호를 보내면 AI가 정보를 줄여 준다. AI가 귀찮다면, 휴대폰처럼 모드를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AI의 목소리를 1단계, 2단계 식으로 높여 가다가 정말 치명적인 행동을 할 때는 전기충격까지 가할 수 있도록 말이다.”

―사생활 침해와 기계의 통제에 반발하는 인간들도 나올 수 있을 텐데.

“물론이다. 그래서 사이버 나우의 전원을 끄고 휴식을 취하는 새로운 레저(unplug-and-relax)까지 탄생할 수 있다. 하지만 생활의 편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접속한 상태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 과거의 히피족(族)처럼 아예 접속을 거부하고 20세기 방식을 고수하는 그룹도 나올 것이다. 이들은 아마 도시 외곽에 민속촌 같은 ‘역사 테마 파크’를 꾸며 놓고 살겠지.”(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자기 저서에서 이런 21세기 히피그룹을 ‘네오 러다이트(Neo-Luddite·신파괴주의자)라고 칭했다)

일러스트=김성남toy4613@naver.com

―당신은 미래 낙관론자인가.

“물론 비관적인 위협 요소도 있다. 우선 치열한 정보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기업들은 사이버상의 개인 정보를 취득해, 첨단 마케팅에 이용하려 할 것이 뻔하다. 국제 조직범죄도 확대된다. 사이버 공간에 저장된 거대 정보들을 누군가 조작해 그곳에 접속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테러를 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미래사회의 좋은 점이 더 많다고 본다. 안경 쓴 사람한테 ‘당신의 시력을 1.0으로 고쳐 주겠다’고 하는데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농업 사회보다 현대 사회의 다양성이 더 풍부하듯, 미래 사회는 미술·음악·학문 등이 더 세분화되고 다양해질 것이다. 또한 인류는 앞으로 최고의 경제 발전을 이룩할 것이다. 수명이 연장되고, 덜 아프고, 지능이 더 발달되며, 생활 수준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킨다.”

그의 미래예측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정교하게 작업한 소설 같다”고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허황되다고? 천만에. 인류가 지금처럼 인터넷을 사용할 것이라고 10년 전에 과연 상상이나 했는가. 앞으로 10년 동안 일어날 변화는 과거 10년의 2~3배 속도에 달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이상한 일들이. 그러니 안전띠를 단단히 매는 게 좋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다음엔 화상 전화로 (인터뷰)하자”고 말했다. “당신 회사에, 화상 전화를 설치하는 것이 워싱턴까지 오는 비행기 삯과 숙박료보다 더 싸다고 말하세요. 정말로(Seriously)!”

▶▷ 제롬 글렌 회장은

35년 경험의 미래학자. 유엔이 후원하는 싱크탱크 ‘유엔미래포럼’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인류의 미래 청사진을 밝히는 작업인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NIC(국가정보위원회) 2010 ~2015 보고서’와 10년 후 미래변화를 예고하는 ‘유엔 미래보고서(State of the future)’ 등 세계 각국의 국가미래 보고서 작성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 7월엔 세계 5만여개 미래연구기관과 협회를 통합한 ‘세계미래연구기구협의회’의 초대 회장으로 선임됐다.

키워드

▲사이버 나우(Cyder Now): 인체에 부착돼 사람을 24시간 사이버 공간과 연결해 주는 특수 장비. 글렌 회장은 콘택트렌즈 형태를 띨 것으로 예측한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인간의 지능처럼 컴퓨터가 스스로 사고·학습·자기계발 등을 할 수 있는 능력.

▲네오 러다이트(Neo-Luddite): 18세기 초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기계파괴(러다이트) 운동에 빗댄 것. ‘시공간 초월의 시대’를 거부하는 반(反)문명주의를 뜻한다.

▲ 2일자 A10면 ‘미래학자 연쇄 인터뷰’의 키워드에서 ‘사이버 나우’의 영문 철자가 ‘Cyder Now’로 잘못 표기됐습니다. ‘Cyber Now’의 오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