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요즘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인가?"이다. 무슨 일이든지 수요가 있으면 공급도 따라붙기 마련이다. 이 수요에 대한 공급 방법은 대략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여론조사다. 선거를 하기 전에 여론조사 해보면 누가 될 것인지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정치분석가들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예언가들이다.

요즘 국내 언론에서 가장 활발히 소개되는 예언가는 차길진(60) 법사다. 큰 문제에 대해서 가장 적중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내년 대선에 대해서는 "홀연히 상서로운 빛이 무궁화 동산에 비치고, 밝은 달에 학이 날아올라 부를 날을 맞이하네"라는 알듯 말듯한 예언을 하였다. 필자는 차 법사를 보면서, "이 세상에 수많은 직업이 있지만 차 법사는 어떻게 하다가 이처럼 독특한 직업을 갖게 되었는가"하는 의문을 가졌다.

차 법사는 뿌리 깊은 예언가 집안의 후손이다. 그의 아버지는 빨치산 토벌대장을 지낸 차일혁이지만, 할아버지뻘 되는 인물은 그 유명한 보천교(普天敎) 교주인 차경석(車京石·1880~1936)이고, 차경석의 부 친은 전봉준의 핵심참모였던 차치구(車致九)였다. 전북 정읍의 입암산(笠岩山) 아래에 본부를 두고 있었던 보천교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민족종교 단체였다는 것이 보천교 전문가인 안후상(44)씨의 주장이다. 한때는 신도가 300만 명에 육박하기도 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하면서 호남지역에서는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었고,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던 호남 인심을 다독거리면서 비전을 제시한 인물이 바로 차경석이었다. 경상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입암산 아래로 이사를 왔고, 독립운동가들도 비밀리에 보천교의 자금지원을 받았다. 근래에 독립훈장을 추서 받은 탄허(呑虛) 스님의 부친 김홍규는 원래 보천교의 5대 요직 가운데 하나인 목방주(木方主)를 맡았던 인물이었다.

차경석은 본인을 '천자(天子)'라고 자칭했기 때문에 일제의 조직적인 감시와 탄압을 피할 수 없었다. 1936년 차경석이 사망하자마자 보천교는 강제로 해산되었고, 그 본부 건물이던 십일전(十一殿)이 해체되어 서울의 조계사 대웅전 건물이 되었던 것이다. 차 법사의 인생 행보를 보면서 집안 내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조용헌 goat135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