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드디어 제5부가 되었다." 1993년 가을 경실련 관계자들은 한 주간지의 사회적 영향력 조사에서 경실련의 순위가 매우 높게 나오자 흥분하여 이렇게 외쳤다. 입법, 행정, 사법, 언론에 이어 시민운동이 제5부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경실련이 대표 상품으로 내건 금융실명제가 그해 여름 YS정부에 의해 전격 채택된 결과였다.

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기존의 재야 민중운동은 그 반(反) 체제적 성격을 극복 못한 채 사회부적응의 중병을 앓고 있었다. 3김의 지역정당 역시 민주화에 따른 시민의 다양한 욕구를 담아내는 데 한계를 노정했다. 그 빈틈을 경실련은 '비판보다 대안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잘 치고 들어갔다.

그러나 호황은 불황을 예비한다고 이후 경실련은 쇠퇴의 길을 걷는다. 핵심원인은 리더들의 도덕적 타락이었다. 대통령 아들 김현철씨의 비리가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입수했건만, 사무총장은 그것을 안기부에 갖다 바쳤다. 후임 사무총장은 원고 표절 문제로 중도하차했다. 연구조사의 결과물을 출판하려는데 그 작업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교수가 자기 이름으로 내겠다고 해서 결국 그렇게 된 일도 있다. 밖으로는 금융실명제를 외치면서 안으로는 원고실명제도 실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교수는 현재 모 대학 총장으로 경실련의 대표적 위치에 있다.

1994년 참여연대의 출현은 한국 시민운동의 새로운 전기였다. 정부로부터 일절 재정적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도덕적 선명성과 재벌의 횡포를 견제하는 소액 주주운동은 참여연대를 단기간 내에 가장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로 급성장시켰다. 참여연대의 성공은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북한의 식량난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던 기존 운동권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NL과 PD라는 핵심 콘텐츠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변화 없이 시민운동의 외피를 뒤집어쓰는 '민중운동의 시민운동화' 현상이 본격화된 것이다.

그 폐해는 심각했다. 본시 시민운동은 계급이익을 추구하는 노동운동과 달리 공화주의에 입각해 사회적 공동선을 추구한다. 또한 반체제 변혁운동과 달리 체제 내의 개량을 추구한다. 그러나 '민중운동의 시민운동화'로 인한 정치적 시민운동의 출현은 그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시민적 덕성이 있어야 할 자리에 증오심에 불타는 집단이기주의가, 숙의(熟議) 민주주의가 있어야 할 곳에 대중선동형 포퓰리즘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0년의 낙천낙선운동, 2002년의 촛불 반미운동, 2003년의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 작년의 맥아더동상 철거투쟁, 최근의 평택 미군기지 이전 저지투쟁 등이다.

설상가상으로 정치적 시민운동에 동지적 연대의식을 가진 정권의 탄생은 이들을 시민운동의 본령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정치권력과의 유착, 손쉬운 자금 확보는 이들의 도덕적 타락을 촉진시켰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참여연대, 여성단체연합의 거액 빌딩 신축 움직임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한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서강대 겸임교수

그렇다면 시민운동은 어떻게 개혁되어야 하는가? 무엇보다 ‘시민운동의 한국적 특성’이 제거되고 선진국형 시민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 종합백화점식 정치적 시민운동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싱크탱크와 싱글 이슈의 풀뿌리 시민운동이 대체해야 한다. 그래야 전문성 결핍과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의 시민단체들에 자체 개혁의 의지와 역량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역사는 어느 집단이건 권력의 단맛을 누리는 동안 자체적인 환골탈태에 성공한 예가 별로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2007년 대선은 분수령이 될 것이다. 정권교체가 일어나 작은 정부가 실현될 경우, 적어도 엊그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자위조치라며 옹호하는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와 같은 단체에 정부 예산 1억원이 지원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개혁의 주체에서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가, 시민운동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서강대 겸임교수

▲본지는 지난 2006. 7. 10.자 조선일보 신문 A35면에 신지호 자유주의 연대 대표가 쓴 '시민운동, 개혁대상으로 전락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김성훈 상지대학교 총장 겸 경실련 공동대표가 '민족화해의 첫걸음, 남북경협의 현장' 책자를 출판함에 있어 전혀 기여하지도 않았는데도 그의 이름으로 출판하였다"는 취지의 기고문을 게재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성훈 총장은 위 책자의 출간에 있어 기획, 정책 제안, 기초자료의 제공, 편집방향의 제시 등 연구책임자 중 한 명으로서 상당한 기여를 하였고, 위 기고문 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