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3일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혹시 세금을 올리더라도 근로소득세는 상위 20%가 세금의 90%를 내기 때문에 나머지 봉급생활자는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이 말을 전해 듣자마자 울컥 솟아오르는 생각은 대통령 자신이 무슨 일이 있으면 곧장 들고 나오는 이 나라의 '상위 20%'라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과연 알고 있기나 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한 달에 460만원을 받는 봉급생활자면 소득 상위 20%에 해당한다. 국세청은 소득이 유리알처럼 드러나는 이들의 월급봉투에서 연간 400만원가량의 근소세를 원천징수하고 있다. 웬만큼 큰 규모의 기업이 아닌 한 월 460만원의 월급을 받으려면 그 직장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해야 하고 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가장이다. 그 월급에 아이들의 교육비를 감당하기도 힘든 처지다. 제 집이 있으면 그래도 행복하고 다행스런 편에 속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런 이들을 서민들을 착취하던 귀족계급이나 되는 것처럼 세금으로 몰아붙이겠다는 것이다. 세금을 올려도 결국 이들만이 둘러쓸 것이니 다른 국민들은 안심하라면서 그 돈으로 생색을 내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상위 소득 20%의 세금만 더 거둘 수 있는 것처럼 말한 것도 사실과 맞지 않는다. 고소득층이나 저소득층이나 똑같은 소득세법에 따라 세금을 낸다. 가령 세금을 더 걷기 위해 면세점을 100만원 낮추면 연봉 3억원의 세금은 35만원, 연봉 3000만원의 세금은 17만원이 각각 늘어난다. 어느 쪽의 고통이 더 클지는 물어 보나마나다. 혹시 돈 있는 국민은 國外국외 追放추방하겠다는 決意결의를 갖고서 富裕稅부유세를 신설해 돈 많은 사람들의 지갑만 따로 털 계획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이 없다.

요즘 사람들이 더 가슴에 맺힌 것은 그렇게 거둔 세금을 쓰는 방식이다. 아무리 국민 생활이 쪼들리게 된다 하더라도 그 돈을 국가경쟁력을 위해 투자한다면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참을 수 있다. 자식들 위해서라면 제 배 곯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이 나라 부모들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이 국민 저 국민 호주머니에서 꺼내간 수십조원을 選擧선거에서 재미 보겠다고 허허벌판에 정부 청사를 짓는 데 쓰고 있는가 하면, 동맹국가에게 얼굴 붉히고 싶을 때 붉힐 수 있도록 자주국방을 하는 비용에 600조원을 쓰겠다고 한다.

대통령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市場시장에서 소비가 잘되는 나라다. 대기업은 해외에서 활동하고, 돈 많은 사람은 해외에서 돈을 쓰기 때문에 국내 시장이 메말랐다. 양극화를 해소하면 국내 소비가 살아나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장이 잘될 때 양극화가 완화되는 건 경제의 상식이다. 그 순서를 바꿔 양극화를 해소해서 성장 동력을 마련한다는 이론의 타당성을 현실 경제에서 증명해 낸다면 그 이론은 아마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될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이 1930년대 대공황 때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경제 시스템에 '사회적 일자리'로 숨을 불어넣은 성공 사례 이후, 개방경제 체제에선 실효성이 없다 해서 폐기되다시피 한 이론을 이 마당에 다시 들고 나오면 국민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잘사는 사람에게서 갈퀴로 긁듯 돈을 긁어 못사는 사람에게 나눠주면 실제로 반짝하고 전체 소비 규모가 커질 수는 있다. KBS가 얼마 전 新신자유주의에 대한 代案대안이라면서 한국이 따라가야 할 길이나 된 듯이 소개한 차베스 대통령의 베네수엘라에선 실제로 그런 정책을 썼다. 그 결과 불과 10년 만에 1만2000개였던 주요 기업체 수가 6000개로 줄어들어 버렸다. 그 결과 그 나라 경제가 어떻게 됐는지는 세계가 보고 알고 있다.

한 나라의 국민 경제는 대통령이 혼자 생각해 낸 독창적 이론을 실험하는 실험장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런 독창적 이론을 국민을 상대로 실험하기보다는 앞서간 나라들이 성공한 사례를 교본으로 삼는 게 백 번 마땅한 일이다.

대통령은 대학입시제도에 대해 "수능과 내신을 종합하면 1% 내의 인재를 가려낼 수 있다. 그런데 대학은 0.1% 내의 인재를 선발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전 국민을 序列化서열화하겠다는 것이고 교육을 망치게 된다. 대학은 인재를 뽑는 경쟁을 하려 하지 말고 키우는 경쟁을 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라면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良質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것인가 하는 문제여야 한다. 그게 '序列化서열화'니 뭐니 하는 배부른 구호보다 몇 배나 중요한 일이다.

미국에선 교사 월급을 학생 성적에 따라 差等차등 지급한다는 방안까지 나오고, 일본에선 고교평준화 철폐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람의 경쟁력이 곧 나라의 경쟁력인 시대에서 사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교육에 경쟁 원리를 도입하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세계의 大勢대세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학교는 우수한 사람을 뽑으려 하지 말고 우수한 사람을 키우는 경쟁을 해야 한다"는 멋진 말을 한다고 해서 뒤집힐 리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한민국 교육만을 경쟁없는 地上天國지상천국으로 만들어 버리면 결국 우리 자식들은 남의 나라 남의 기업의 종살이나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정말 진심으로 호소한다. 대한민국을 정상적인 나라로 운영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