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앤더슨 미국 코넬대 명예교수는 '상상의 공동체-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라는 책에서 민족을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라고 정의했다. 민족이 과거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산업사회의 발전과 함께 만들어진 근대적 가치이자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럽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게 된 사람들로부터 민족공동체가 형성되어 갔지만, 최초의 민족주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백인 이주민의 후손인 크리올료(creole)들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이다. 크리올료들이 유럽 본토인과 다른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면서 발명한 민족주의가 유럽과 제삼세계로 퍼져나갔다는 분석이다.

앤더슨의 이런 주장은 국내의 일부 학자들에게도 받아들여져 탈(脫)민족 논쟁이 일어났다. '민족(民族)'은 근대 일본에서 '민(民)'과 '족(族)'이 합쳐져 만들어진 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서도 20세기 들어서야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은 청의 왕도(王韜)가 1882년 '양무재용기소장(洋務在用其所長)'에서 사용한 사례가 있듯이 일본에서 만든 조어만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원문에 민족이란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실록은 민족 대신 '아족류(我族類)'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때의 '我族類(아족류)'는 '우리 민족', 또는 '우리 겨레'로 번역하면 정확하다. 이 용어는 일본인·여진인 등 이민족(異民族)과 구분하는 비교사로 주로 사용된다. 이에 비해 일가친척을 뜻하는 겨레붙이는 실록에서 '族(족)', 또는 '族人(족인)'으로 표기된다.

앤더슨은 라틴어의 대중성이 상실되고 루터의 지방어(독일어)를 통한 종교개혁과 특정지방어가 행정어로 보급되고, 새로운 시장을 찾던 인쇄자본주의가 지방어 시장을 넓혀간 것이 민족주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기 수천 년 전부터 우리 민족은 단일 언어를 사용했고 한자와 이두를 행정어로 사용했다. 최근 신용하 교수가 '민족의 사회학적 설명과 상상의 공동체론 비판'에서 "민족은 허구 아닌 실재하는 공동체"라고 주장한 것은 한국사에는 맞는 개념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