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대선배님을 소개하는 일은 참 부담스럽습니다. 1961년 제가 태어났을 때 이규태(李圭泰) 고문은 이미 조선일보의 3년차 기자였거든요.

바로 그 해 이규태 사회부기자는 소록도 나환자촌을 찾습니다. 환자들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끈질긴 취재를 끝내고 ‘소록도 기행’이라는 연재가 탄생했던 것이지요.

작가 이청준은 이를 소재로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썼고 이규태도 작중 인물로 등장합니다. 이청준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죠. “그는 내 소설의 주인공이었지만 이제 나는 그의 독자다.”

1933년 전북 장수의 외진 시골에서 태어난 이규태 고문은 “어릴 때 종이를 처음 보고 너무 신기해 그걸 접어놓고 잠자다가도 펴보곤 했어”라고 회고하십니다.

연세대 이공대 졸업 후 취직할 곳이 없어 종로 음악다방 DJ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59년 3월 1일 조선일보에 공채2기로 들어와 ‘이규태 기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 고문은 3 월 1일이라는 날짜를 생일 다음으로 좋아하십니다.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연재 중인 ‘이규태코너’ 첫 회가 나간 날도 바로 1983년 3월 1일이거든요.

“3·1절 아침이어서 독립선언 현장인 명월관 내력을 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명월관이 들어서기 전 이완용이 살던 시절 그 집 고목에 벼락쳤던 이야기를 썼을 거야.”

이 고문은 1965년 조선일보의 첫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총탄 속을 헤매기도 했습니다. 당시 베트남 체류는 그의 마음속에 있던 우리 현실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털어버리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그는 우리 역사와 한국인의 의식을 탐사하는 데 일생을 쏟았습니다. 1968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개화백경’을 시작으로 ‘6백년 서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획연재물을 썼습니다.

한국인의 재발견, 한국인의 의식구조, 신바람의 한국학처럼 우리 역사를 긍정적으로 조명한 저서도 100권이 넘습니다.

※ 이 글은 2004년 이한우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가 이규태 대기자를 소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