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一家일가가 8000억원의 재산을 사회에 내놓기로 했다. 이 회장 일가와 삼성계열사들이 2002년 설립한 '삼성 이건희 장학재단' 기금 4500억원에다 지난해 사망한 이 회장 막내딸의 재산 등 자녀들의 추가 출연금 3500억원을 합친 돈이다. 이 회장과 삼성그룹은 이 돈이 어떻게 쓰이든 관여하지 않겠다면서 用處용처와 사용방법에 대해선 정부가 시민단체와 논의해 결정해달라는 뜻을 밝혔다.

이 회장은 발표문을 통해 '1996년 자녀들이 취득한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등의 증여문제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데 대해 깊이 사과한다'면서 그런 사과의 표시로 사회기금을 헌납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와 함께 국세청의 증여세 부과에 대해 낸 소송과 공정거래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취하하고, 금융산업구조개선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도 "국회 논의 결과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과 삼성그룹의 이 같은 결정은 회사와 그룹 오너 일가가 불법 大選대선자금 제공, 편법 상속, 안기부 X파일 파문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의 自救策자구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입장에선 사상 최대 규모인 8000억원을 사회에 내놓는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삼성이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된 原因원인을 만들었던 삼성의 과거 행동은 지금 이 사회에서의 기업의 존재방식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오늘의 '삼성 문제'는 한국 최대 기업집단의 상속자들인 이 회장 자녀들이 삼성에 비교할 상대도 되지 않는 다른 기업들이 1000억원대의 상속세를 물고 있는 데도 몇백억원의 세금만 내고 기업을 물려받으려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법의 '구멍'을 활용해 이 같은 節稅절세 수법을 찾아낸 기업內내 인사들은 功臣공신 대우를 받았겠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제안을 받아들인 결정이 삼성을 이처럼 곤란한 처지에 몰아넣은 것이다.

법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해서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삼성'이라고 부르는 한국 제1 기업이라면 건전한 국민 상식과 기업의 품위와 명예를 먼저 생각했어야 하는 것이 삼성의 한국 내 位相위상이다. 삼성은 이와 함께 공식적으로 삼성그룹 내에 있는 기업만이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삼성과 관련을 맺고 있는 기업들이 기업의 生態系생태계를 교란하는 경영수법과 업무행태로 오늘의 삼성에 대한 사회적 反感반감을 불러오지 않았는지도 되돌아봐야 한다.

이 회장 일가가 8000억원을 내놓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기업이건 기업주건 재산을 아무 조건 없이 사회에 헌납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건전한 발달에 有害유해한 前例전례가 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것은 강압적 군사정권下하에서 번번이 되풀이되던 재산 헌납의 과거사에 비추어봐도 분명한 일이다. 기업과 기업 종사자가 번 돈을 정부와 시민사회단체가 알아서 써달라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책임한 태도라고도 할 수 있다. 기업은 '버는 데서도' 윤리와 책임을 지켜야 되지만, '쓰는 데서도' 윤리와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