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드라마 '궁'(MBC)이 11일 첫 방송을 앞두고 관심을 모으고 있다. '궁'은 60만권 이상 팔린 히트 만화를 각색했다는 점에서 제작단계부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또 윤은혜, 주지훈 등 드라마를 경험하지 못한 신인을 주인공으로 발탁, 캐릭터 적합성 여부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현재 대한민국이 입헌군주국가라는 가정 하에 궁궐에서 펼쳐지는 10대들의 사랑은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제까지 만화를 원작 삼은 드라마가 많았지만 '궁'이 비상한 주목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해 말 한 인터넷 사이트 설문에서는 2006년 가장 기대되는 드라마로 '궁'이 최다 득표한 바 있다. '궁'이 과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할까. 시청포인트를 세 가지 간극을 통해 짚어봤다.

만화와 드라마의 간극

만화 '궁' 채경(왼쪽)과 드라마 '궁'에서 채경 역을 맡은 윤은혜.

박소희 작가(28)의 원작 만화는 '궁'을 '구중궁궐 구구절절 판타스틱 어드벤처'라고 소개한다. 언뜻 과장되고 코믹한 장르명이지만 극의 내용을 함축하는데 이만큼 적절한 표현도 없다. 판타스틱한 구중궁궐의 풍경, 구구절절하면서도 어드벤처에 가까운 황실의 정략과 사랑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표현하는가에 우선 드라마의 성패가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지난 4일 제작발표회를 통해 공개된 '맛보기' 필름은 합격점을 받았다. 일단 화면의 질감이 고급스러워 편안하게 와닿는다. 황실의 묘사도 색채적이며 사실적이다. 52억의 막대한 제작비가 허투루 쓰이진 않은 듯하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박소희 작가도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훌륭하게 표현됐다"고 만족해 했다.

만화적인 표현들을 숨기지 않은 연출 기법도 재미있다. 일례로 주인공 채경이 시할머니되는 황태후에게 '대략난감'등 신세대 용어를 설명하는 장면. 자막으로 처리된 용어들이 화면을 배회하며 황태후의 어지러운 머릿속을 암시한다. 원작을 아는 시청자들에게 특히 흥미로울 대목이다.

10대와 중장년층의 간극

만화 '궁'은 하이틴 로맨스이다. 드라마는 10대에 편중된 독자층을 중장년 시청자층으로 확대해야하는 부담을 짊어진다. 두 그룹 사이의 간극을 메워야 한다. 2년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김혜자 등 베테랑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다. 김혜자는 평소 주연급이 아니면 배역을 맡지 않는다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출연 결정은 그만큼 조연급들의 비중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김혜자는 '드라마를 통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표현하고 싶다'는 황인뢰 감독을 신뢰하기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다. 귀족의 사회적 책무를 뜻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훌륭히 표현된다면 10대, 20대 이상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원작의 줄거리 구조에도 중장년층을 끌어들일 미끼는 있다. 만화는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결혼한 이후의 삶이 중심이다. 인은하 작가는 "만화가 신데렐라 스토리 그 이후를 다룬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한다. 결혼이 행복한 결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시작인 것이다. 갈등을 겪고 이겨내는 과정을 지구력 있게 그린다면 중장년에게도 강한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가수 혹은 모델과 탤런트의 간극

드라마 '궁'에는 신인 연기자들이 유독 많다. 주연 4인 중 송지효(황태자의 숨겨진 여자친구)를 뺀 윤은혜(황태자비 채경), 주지훈(황태자), 김정훈(이율)은 제대로 된 정극에 출연한 경험이 없다. 각자 가수(윤은혜, 김정훈)와 모델(주지훈) 분야에서 지명도를 쌓았지만 연기력과는 별개 문제다. 이 때문에 캐스팅 과정에서 '무리한 모험'이라느니 '이름값에 기댔다'라는 비난을 샀다. 이에 대해 황인뢰 감독은 "일단 드라마가 시작되면 모든 논란은 사라질 것"이라고 자신한다. 김혜자 역시 "발음이 가끔 부정확한 것만 빼고 그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고 거들었다.

시사회 필름을 보았을 때 연기가 다소 가볍고 과장되었다는 느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극초반 캐릭터의 명쾌한 강조, 구시대적인 정략에 얽힌 10대의 심정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없진 않다. 김혜자가 '철딱서니 없어서 사랑스러웠다'는 성격이 반영된 결과인지, 윤은혜는 왈가닥 채경 역에 무리없이 들어맞는 인상을 주었다.

인은하 작가는 "극을 순정 판타지보다 신데렐라의 성장기로 그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드라마는 비단 극중 캐릭터들의 성장기만은 아니다. 드라마에 첫발을 내디딘 신인들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이들의 톡톡 튀는 감각, 연기력의 발전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한 볼거리이다.

(스포츠조선 이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