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기자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최근 일본인들의 태도는 황당하다. "30년 동안 주인공 노릇을 했으면 이제 물러날 때가 된 것 아닙니까?" 이렇게 들이대도 시원치 않을 만큼 성장시대의 과실을 독점한 세대에게, "제발 떠나지 말아주세요" 하며 구애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대의 힘도 결국 수(數)에서 나오는 것일까? 조만간 정년이 시작되는 일본의 전후(戰後) 베이비붐 세대(50대)는 1902만명. 전체 인구의 14.9%를 차지, 세대 중 최대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일본에선 50대 중에서도 숫자가 가장 많은 1947~49년생을 '단카이(團塊·덩어리)'라고 부른다. 일본인들이 말하는 '단카이가 회사를 떠나면 안 되는 두 가지 이유'는 모두 숫자와 관련이 있다.

첫째, 숫자가 많아 이들이 퇴직하면 국민의 연금 부담이 너무 커진다. 기업에서 몇 년이라도 더 잡아줘야 후배 세대가 한숨을 돌릴 수 있다. 둘째, "실력이 없으면 숫자로 밀어붙이라"는 말처럼 서로 똘똘 뭉쳐, 이들이 떠나면 기업에 기술 공백이 생길 정도로 고도성장기의 기술 노하우를 독점했다. 오죽하면 '덩어리'란 별명까지 붙었을까.

사실 단카이는 윗세대와 달리 천재성이 없기로 유명하다. 전전(戰前) 세대인 이부카 마사루(井深大), 오가 노리오(大賀典雄) 이후 창조적 아이디어맨을 배출하지 못한 소니가 단적인 사례다. 도쿄대 야스다강당 사건, 요도호 납치 사건, 아사마산장 사건 등 가슴만 앞세우다 결딴난 좌경사건은 몽땅 이들 차지다. 그리고 한술 더 떠 후배 세대인 40대를 '놀고 먹기 좋아하는 신(新)인류'라고 공격하며 기업에서 단카이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요즘 분위기라면 일본의 40대는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한 50대의 뒷바라지나 하다가 동반 퇴장할 처지다.

하지만 '단카이 현상'의 본질을 보다 정확히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자녀 세대인 30대, 즉 '단카이 주니어'들이다. 세대 인구 1851만명, 50대에 필적하는 숫자이지만 실력도 없고 뭉치지도 못해 '거품족(族)'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대학만 나오면 취직이 됐던 거품시대 말기에 대거 직장에 들어가 기업 내부에 '놀자판 서클 문화'를 뿌리내린 한심한 실적도 가지고 있다. 후배 세대를 누르고 자녀 세대는 관리하지 못한 채, 단카이들이 50조엔의 퇴직금을 싸들고 나몰라라 대량 퇴장한다는 것이 이른바 '2007년 문제'의 핵심이다.

일본의 단카이는 한국의 386세대와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학생운동의 주역이라는 점, 그래서 공부를 덜했다는 점, 그럼에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 똘똘 뭉쳐 뭔가 챙기기에 능하다는 점 등. 지난 1일 한국은행이 "우리도 한 세대의 집단 퇴장에 대비해야 한다"며 정의한 베이비붐 세대(42~50세)엔 386세대의 전반(前半)이 중첩돼 있다.

일본인들은 스스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카이 세대의 퇴장과 함께 줄어들기 시작하는 인구 감소(減少)의 문제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일당백(一當百)'의 반짝이는 젊은이가 있다면 인구 감소가 무슨 문제가 될까. 바로 그런 젊은이를 키워내지 못한 점, 그래서 노회한 단카이 세대의 바짓가랑이를 잡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일본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것이다. 훗날 우리는 베이비붐 세대, 나아가 386세대를 웃으며 보낼 수 있을까.


(선우정 도쿄특파원 s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