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범 차장대우


인터넷 게시판에 '악취'가 진동한다. 익명이나 가명으로 댓글을 달 수 있는 사이트는 어디든 막론하고 욕설과 조롱이 난무한다.

A : "수구 저 개×× 철자 틀렸네. 하하하. '물러가라'를 '물어가라'로 적은 거 봐라. 솔직히 저런 놈이 국보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설치냐. 저 시간에 공부나 해라. 무식한 새×."

B : "이런 ×같은 놈들을 봤나. 지네들이 초 가지고 지랄할 때는 나라를 살리는 집회이고, 남들이 하면 불신과 증오의 언어? 정말 이중적인 놈들…. 뇌사모 같은 놈들."

지난 4일 '국보법 수호 국민대회' 이후 한 인터넷 게시판에 뜬 댓글들이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나 존중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입에 담기조차 거북한 쌍스러운 욕과 증오만이 난무한다. 한국의 인터넷은 어느새 '분노와 증오의 하수구'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 '하수구'에서 정치인의 이름인들 온전할 리 없다.

C : "놈현이를 왜 북으로 보내냐? 그 ×× 북에 가면 국가기밀 모두 불 텐데…. 지하 감방에 가둬 버려라. 밥주지 말고. 남로당 ×들도 모두 함께."

D : "맹바기가 그래도 발끈해보단 낫긴 해. 발끈해야 좀비 미소에, 정책도 전혀 없잖아."

'놈현'은 노무현 대통령을, '발끈해'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맹바기'는 이명박 서울시장을 가리킨다. 정당도 예외가 아니다. 열린우리당은 '열우당(劣友黨·열등한 친구들의 당이란 뜻)' 내지 '미친아가리당'으로, 한나라당은 '딴나라당' 혹은 '차떼기당'으로, 민주당은 '잔민당' 등으로 불린 지 오래다.

익명의 커튼 뒤에 숨은 일부 20~30대 네티즌들은 노년세대를 무시하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40년, 50년대생들이 뭐라 그러든 우리 세대는 그런 거(국가보안법) 없애자는 주의가 많거든…. 어차피 없어질 거, 뭐 그리 소중하다고 애물단지 끌어안고 버티고 있니? ㅎㅎㅎ."

"많거든요"라든가, "끌어안고 계시나요?" 같은 존대말은 애시당초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젊은 세대의 '비웃음'에 중년·노년층도 참을성을 잃고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들어도 거슬림이 없어진다'는 이순(耳順·60세)의 나이를 넘긴 한 퇴직자는 "전국민은 개구리의 독재와 그 정체성을 의심하고 있다. 이 정권을 퇴진시키자"며 막말을 쏟아냈다. 이런 댓글들은 오로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증오를 퍼부을 뿐, 사회발전에는 도움이 안 된다.

글은 마음의 표현이라고 한다. 또 한 사회에 어떤 말과 글이 유행하는가를 보면 그 사회의 건강성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인터넷의 욕설장화(化)'가 진행되고 있다.

제자백가의 하나인 순자(荀子)는 "다투면 어지러워지고, 어지러워지면 꽉 막힌다(爭則亂,亂則窮)"고 했다. 한국의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 세대·계층·집단간 다툼으로 나라는 어지럽고, 정치와 경제는 점점 궁벽해지고 있다.

언어의 타락은 사회의 타락을 불러온다. 극단적 언어를 방치하면, 사회도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이제 모두가 나서서 "욕설 그만"을 외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실명제'가 됐든 다른 무엇이 됐든, '저주의 욕설판'을 걷어치우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지해범 hbj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