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이라크 파병 동맹국 중 우리나라를 빼고 호명한 사건과 관련, 외교가에선 91년 걸프전 때 일본의 사례가 거론되고 있다.

당시 일본에선 “걸프전(戰)의 패자는 후세인이 아니라 일본이다”라는 자성(自省)론이 나왔다. 걸프전 당시 일본은 총 전비(戰費)의 20% 가까운 130억달러를 냈다. 그러고도 일본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 것이다.

특히 90년 8월 이라크의 기습 침공을 당했던 쿠웨이트는 종전 직후인 91년 3월 17~18일자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에 감사 광고를 실었다.

파병 등으로 쿠웨이트를 국난에서 구해준 30여개 나라들에 감사하는 내용을 담은 전면 광고였다. 그런데 이 광고 어디에도 일본은 없었다. 의료지원단 몇 명 보낸 나라들이 버젓이 이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130억달러를 낸 일본은 빠져 있었던 것이다.

미국 내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국무부는 걸프전에 공헌한 30여개국의 국기를 넣어 승전 기념용 셔츠를 제작했는데, 여기에도 일장기가 빠졌다. 종전 직후에 실시된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의 80%가 “일본의 걸프전 개입 회피에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의 고위 관리들은 공개적으로 평화유지군조차 보내지 못하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든 일본을 가리켜 “얼굴 없는 일본”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오히려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은 3월 중으로 예정됐던 일본 방문 계획을 “전후 처리 때문에 바쁘다”며 취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본은 즉각 외교 전략과 조직의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갔다. 국민대 김영작(金榮作) 교수는 “당시 걸프전은 일본이 대외 전략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됐고, 이것이 지금의 자위대 해외 파병의 흐름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박철희(朴喆熙)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걸프전에 대한 자성이야말로 현대 일본 외교의 근본이 바뀌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며 “이 일을 계기로 대대적인 외교 혁신론이 제기됐고, 오자와 이치로 당시 자민당 간사장을 중심으로 ‘보통국가’론이 등장했다”고 했다.

일본은 이번 이라크전에 우리의 7분의 1인 500명을 보내고도 부시 대통령의 동맹국 리스트에 네 번째로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