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환의 「택리지」에 보면 정유재란 때 명나라 원병(援兵)이 충청도 직산전투에서 말 탄 원숭이 수백 마리를 전투에 투입, 적진을 좌충우돌 헤집어놓고 왜병들이 원숭이 병사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동안 4000 기병으로 기습, 총 한번 쏘지 못하게 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했다. 이 원숭이 병사에 대한 설이 구구하여 원숭이해를 맞아 살펴보고자 한다.

러시아인 니키친은 동양 기행문에 몽둥이 든 원병(猿兵)에게 호위받는 우두머리 원숭이가 있는데 사람에게 저희네 권속이 잡혀가면 무장한 일단의 무리를 미행시켜 그 집을 습격, 가재도구를 부수고 탈환해 온다는 견문을 적고 있다. 중국 운남성 접경에서 원숭이 임금이 네 마리의 무장한 원숭이에게 호위받으며 열병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기록도 있다.

「오잡조(五雜俎)」라는 중국 문헌에는 명나라 명장 척계광(戚 光)이 수백 마리 원숭이를 무장시켜 왜구를 섬멸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직산전투의 원기(猿騎)가 처음은 아닌 것이 된다. 충청도에 원숭이 못에 대한 설화가 한 유형을 이루고 있는데 직산전투에서 실종된 원숭이가 야생화하여 설화의 요인이 됐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집단행동에 뛰어났다 해도 해외 전투에까지 투입할 만한 전투 능력이 있을 리 없다고 보고 원숭이로 변장한 특전부대일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고대부터 원기(猿騎)라 하여 말 탄 원숭이가 아니라 원숭이처럼 날렵한 마상재(馬上才)를 익힌 특과 기병으로, 적과 대결해 전선을 헤집는 전위부대를 일컬었으며 그 원숭이 가장부대가 참전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연안에 표류해온 유럽 사람들을 외인부대로 양성, 전투에 투입한 것을 서양 사람들 생김새가 원숭이 같다 하여 원병(猿兵)으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연전에 형개(邢价) 원군 사령관의 부관이었던 김대현(金大賢)의 15대손 집에서, 돌아가는 형개부대를 그린 「왕조장사전별도(王朝將士餞別圖)」에 「원병삼백(猿兵三百)」이라 쓰인 깃발을 앞세우고 원숭이 병사들이 춤추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원숭이 가장의 특전부대일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