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는 은은한 향과 멋이 묻어난다.
매력적인 포도주 향 같으면서도 잔잔한 음악 같은 향. 굳게 다문 입술을 강한 이미지를 풍기지만 그 위로 미소가 흐르는 순간 강인함은 여유로움으로 바뀐다. 그의 삶과 연기에는 두 매개체가 있다. 중학교때부터 연주하기 시작해 대학에서 전공했던 바순과 평소 즐기는 와인 한잔.

전광렬

▲ 바순

KBS 2TV 특별기획드라마 '장희빈'에서 전광렬은 숙종 역할을 맡았다. 궁중 여인들의 암투가 주된 스토리를 이루는 '장희빈'에서 숙종은 그리 튀는 역할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역할의 중요성까지 떨어질까.

"중요한 사건은 숙종의 입에서부터 시작되는걸요." 전광렬은 드라마 속 숙종의 모습을 자신이 연주하던 바순에 비유한다. "솔로 연주를 위한 악기는 아니지만 다른 악기의 음을 받쳐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죠. 숙종도 그런 역할 아닐까요." 자신의 역할이 부각되는 것 만큼 다른 연기자들의 연기를 뒷받침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전광렬은 꼭 바순 연주가 아니더라도 클래식에서 재즈, 힙합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즐긴다. "음악으로 인한 정서적인 숙성이 나를 지탱해준다"고 말할 정도. 그래서 그런걸까. 그가 가장 도전하고 싶은 장르는 '음악영화'. '아마데우스'못지 않은 음악 영화 한편을 기대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 와인

전광렬의 연기는 그야말로 '다채롭다'. '종합병원'에서 강인한 의지력을 지닌 의사로 '청춘의 덫'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정열을 가진 모습으로, '허준'에서는 처절한 듯 하지만 꺾이지 않는 허준의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 '2424'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망가진(?) 조직 폭력배의 모습까지 소화해냈다.

와인을 즐기는 전광렬. 그의 다양한 연기는 같은 해 같은 산지에서 나왔더라도 따는 병마다 맛과 향이 다른 와인과 닮았다. 어떤 역할에도 부담은 없다. "여러 역할을 할 때마다 그 나름의 에너지로 충만해지는 느낌이에요." 오히려 해보고 싶은 역할들이 너무 많아 처음 시작하는 기분이라며 자신감을 표현한다.

그가 출연한 드라마 중에는 '실패작'이 없었다. 하지만 "와인도 보관을 잘해야 맛을 유지하듯 연기자도 자기 관리가 중요해요"라며 긴장을 늦추지 않을 태세다. 동년배 연기자의 층이 얕은 연예계의 현실을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까지 중년 연기자의 '진한' 연기가 아쉽죠." 리처드 기어나 숀 코넬리처럼 남성의 향이 짙게 깔린 연기자. 바로 전광렬이 원하는 배우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