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경동예술'을 다시 조직한 정진씨는 관객들의 반응을 그대로 느끼는 순수 연극은 공연 자체가 그대로 삶의 일부가 된다고 했다.

“작은 무대에서 관객들의 숨소리를 느끼며 함께 호흡하는 순수 연극이야말로 예술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하죠. 그게 계속 사그라져 가는 것을 그냥 팽개쳐 둘 수 만은 없잖아요.”

지난 25일부터 인천 수봉공원 문화회관 소극장 무대에 오르고 있는 연극 ‘동트지 않는 계절’의 연출자 정진(鄭珍·62)씨. 노숙자들의 애환을 그린 이번 작품은 30일까지 공연한다. 시간은 토-일요일 오후4시-7시, 30일 오후 7시.☎433-0057

40여년의 연극 경력에다 여러 편의 TV 드라마를 통해 이름을 알린 그이지만 이번 작품은 그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1984년 창단했다가 5년여만에 경영난으로 문을 닫아야 했던 극단 ‘경동예술’을 14년만에 다시 조직해 첫 정기공연으로 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해에 MBC TV의 대하드라마 ‘설중매’가 아주 인기였어요. 제가 한명회역을 맡아 시쳇말로 한참 떴죠. 생각지도 못했던 인기와 수입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었으니까.” 그럴 때 문득 ‘평생 몸바칠 연극에 투자하는 것도 뜻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답동성당 뒷골목에 있던 2층짜리 건물에 소극장을 차리고 ‘경동예술회관’이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그 해 그곳에서 극단 ‘경동예술’이 태어났다.

“신이 났어요. 연극 동지들이 모여들고, 연극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자리를 다툴 정도였으니까. 더 신나는 건 공연 때마다 관람객이 자리가 모자라도록 찾아왔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것은 한바탕 꿈처럼 잠시였다. 제작비와 극단 운영비가 입장권 수입과 뜻 있는 회사나 개인의 후원금으로 충당되는 것인데 그게 없었던 것이다.

“관객 대부분이 무료 초대권이나 할인권 손님이었던 거예요. 연극을 보겠다는 뜻은 좋았는데 그 방식에 조금 문제가 있었다고나 할까요. 관객은 함께 연극을 키워가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하거든요.”

결국 쌓이는 적자를 견디지 못해 극장은 문을 닫고, 20여명의 단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정씨 자신은 그래도 TV 출연 등으로 살만 했지만 오갈 곳 없는 연극 식구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고 한다.

그 뒤 10여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뮤지컬이나 악극, 서커스 등으로 작품이 대형화되면서 순수 연극은 더욱 설 자리를 잃었다. 탤런트나 영화배우로 한번에 부와 명예를 얻으려는 연기인 지망생은 많아졌지만 연극적 기초를 제대로 닦지 않아 연기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대에 오래 섰지만 하면 할수록 깊이 있는 연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후배들도 돈과 명예를 생각해 배우를 지망한다면 말리고 싶어요.”

인천 화평동 출신으로 동산중학교를 다닐 때 유행했던 코미디 영화를 보러 다니다 결국 배우를 하겠다고 나섰다는 그는 이제 생각하면 그때의 마음이 허영심이었다며 잔잔히 웃었다.

“경동예술이 탄생했던 20여년 전에 비해 인천이 훨씬 커졌는데 문화수준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정책적인 지원 같은 것도 아쉽고…”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연극은 만드는 사람의 열정보다 어쩌면 보는 사람의 열성으로 커가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그는 수지가 맞지 않더라도 순수 연극을 계속 할 것이라며 시민들의 ‘화답’을 기다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