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최종 부도처리된 종로서적 입구에 ‘종로서적 매장 재단장 ’안내문이 붙었다.종로서적은 3일 1차 부도를 낸 뒤 “매장 재단장을 위해 1주일간 문을 닫는다 ”는 안내문을 내걸고 4일부터 영업을 중단했다.<a href=mailto:younghan@chosun.com>/허영한기자 <


우리나라 최고(最古) 서점인 종로 서적이 4일 최종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다.

종로 2가 현재 위치를 95년간 지켜온 '대한민국 1호 서점' 종로서적의
'몰락'은 최근 수년간 계속된 중소 서점들의 폐업과 함께 인터넷
서점의 등장에 따른 본격적인 시장 재편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80년대 '양우당' '삼일서적' 등 종로 2가의 유서깊은 서점들이
문닫은 뒤에도 홀로 종로 2가를 지켜오던 종로서적이 사라짐으로서, 이제
서점의 '종로 시대'는 막을 내린 셈이다.

종로서적과 직·간접적으로 거래해 온 출판사는 2000~3000곳. 최근
자금난에도 불구하고 1000곳 정도는 책을 활발히 공급해 오고 있었다는
점에서 부도가 출판사들에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출판사들의 피해액을 합하면 수 십억원 대에
이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종로서적의 부도는 출판계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예견돼왔다. 90년대
초만 해도 교보와 대형 서점의 쌍두마차로 군림해 왔지만, 92년 7월 종각
건너편에 또하나의 대형 서점인 영풍문고가 문을 열며 본격적인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씨티문고 등 후발주자들에게조차
매출이 뒤졌으며, 예스24와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들에게도 시장을
빼앗기며 매출이 급감, 급기야 지난달 10일 출판사 수금일에 도서
판매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며 종로서적 부도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종로서적이 이렇게 된 데에는 시대 변화와 독자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경영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점 이용
시간대가 평일에서 주말로 바뀌며 가족단위 고객과 대량 구매 고객이
증가하고 있는데도, 이들을 위한 주차 시설이라든가 휴식 공간, 편의
시설 확충에 소홀했다는 점이 특히 지적되고 있다.

종로서적은 그동안 인수희망자 물색에 나서는 등 자구 노력을
벌여왔지만, 인수의사를 보였던 한 의류 유통업자가 지난달 재산 실사
결과 현재의 경쟁력으로는 출판사에 지불할 채무액 변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인수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종로서적이 완전히 문을 닫게 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종로서적 같은 대형 소매점이 문을 닫으면 책을 팔 수 있는 유력한
통로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출판계에서는 지난해 부도 후
청산절차를 밟은 대경유통과 달리 종로서적에 대해서는 채무액 탕감 등을
통해 자구 기회를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종로서적 95년/ 기독교 출판물 전문, 70년대 종로의 명물

1907년 기독교 계열의 '예수교서회'가 지금의 종로서적 건물 자리에
있던 목조 기와집을 구입하면서 종로서적의 역사가 시작됐다. 기독교
서적 출판 및 판매를 해오던 이 서점은 1931년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빌딩을 짓고 '교문서관'이란 상호를 걸고 '예수교서회'에서 독립하며
본격적인 종합 서점의 길로 들어섰다. 교문서관 건물은 국내 최초로
엘리베이터를 갖춘 초 현대식 건물. 63년 '종로서적센터'로 이름을
바꾼 뒤 70,80년대에는 '젊은이의 거리' 종로의 명물로 사랑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