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용식품으로 나온 이탄국수(왼쪽),배고픔속에서 목숨바쳐 일하는 여성돌격대원(가운데),가난 속에서 혼자 살림을 꾸리는 소녀(오른쪽)등 식량난의 구체적인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이 혁명 역사에서 또 한 차례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던 90년대 중반, 이
땅에는 준엄한 시련의 날과 날들이 끝없이 흘러갔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영화 '자강도 사람들'은 북한이 겪고 있는 식량난의 현실을
생생히 담은 최초의 영화로 기록된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가 제작, 올해
개봉돼 지난 5월에는 조선중앙TV를 통해서도 방영되는 등 주민들 사이에
널리 관람되고 있다.

"하룻밤 자고 나면 또 어디에서 사람들이 쓰러졌다. 또 어느 공장이
멎어버렸다. 뼈를 깎아내는 듯한 아픔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데…"로
이어지는 내레이터의 목소리가 폭풍한설이 몰아치는 영상 위로 흐르면서
영화가 전개된다. 2부작으로 제작된 이 영화의 전편이 주로 고난의
현실을 담고 있다면 후편에서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영화는 전력난과 식량난이 극도로 심각한 자강도의 한 건설돌격대 여단장
강호성이 '전기는 나라의 신경'이라고 했다는 김일성교시를 받들어
19개의 중소형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고난의 행군'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돌격대원들은 '자재는 받을 곳도 줄 곳도 없다'는 강호성의 말대로
모든 자재를 자체 해결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산림을 채벌해 가는
외지 사람들의 트럭을 탈취해 목재를 마련한다.

돌격대의 식사를 나눠주는 임무를 맡은 두 여성은 가위바위보를 해 이긴
사람이 국을, 진 사람이 옥수수를 나눠주게 된다. 진 쪽인 강호성의 딸
향실은 "매 사람에게 40알씩 나눌 재간이 없다. 저걸 어떻게 점심식사로
나눠주냐"며 눈물을 삼키고, 책임자(후방참모)에게 식사 담당이 아니라
건설 현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매달린다.

후방참모 송만호는 영예군인 출신으로 돌격대에 자원해 대원들의 침식을
담당한다. 먹을거리가 떨어지자 눈보라속을 이탄(泥炭)을 캐러 떠난다.
이탄은 완전히 탄화되지 않은 상태의 석탄을 말하는데 자강도 주민들
사이에서 이탄을 먹어왔다는 것은 탈북자 증언으로도 나온 바 있다.
송만호는 눈밭에서 만난 한 할머니에게 "이탄을 그냥은 먹기 어렵지만
옥수수가루를 반반씩 섞으면 먹을 만하다"는 설명을 듣는다.

돌격대 여단은 각 대대별로 대용식품 품평회를 열기로 한다. 식탁은
화려해 보이지만 차려진 음식은 '가둑지짐', '나치가루떡',
'뽕잎죽', '뽕잎지짐', '니탄가루빵', '니탄가루국수' 등이다.
품평회는 대원들을 위해 이탄을 캐러갔다가 눈밭에서 얼어죽은 송만호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이기도 했는데, 강호성의 추모사는 현실의 비애를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방금 희생된 동지의 시신을 언 땅에
묻었습니다. 내일은 또 누가 우리 곁을 떠나게 될지 그것도 아직
모릅니다. 피눈물을 뿌리며 시작한 이 고난한 행군이 이처럼 가슴 아픈
희생을 가져오리라고 생각해 본 사람도 없었고, 음식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풀뿌리 나무뿌리 이탄덩어리를 먹으리라고 상상해본 사람도
없었습니다."

영화의 주제는 이 고난의 행군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을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외부
세계에 대해 "북한은 천국이다. 세상에 부러움이 없다"고 공언해 왔던
기존의 주장을 포기하고, 현실을 솔직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북한의 최북단에 위치한 자강도는 살기가 척박해 주민들 사이에서
'자갈도'라고도 불리는데 98년 김정일 현지지도 이후 '자강도를
본받자'는 구호와 함께 이른바 '강계정신'의 근원지가 되면서
'고난'의 극한 속에서 고난을 극복하는 모범으로 부각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