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남서 고성까지 도보 1천㎞…"푸근한 인심에 어려움 몰라" ##.

♧ 발 크기 225㎜, 키 159㎝, 몸무게 47㎏. '바람의 딸' 오지의
여행가로 잘 알려진 한비야(41)씨의 체격 명세서(?)이다. 등산화가
깜찍스럽기까지 한 그 작은 발로 세계 일주하고, 이제는 국토 종단
을 하고 있다. 봄바람이 살랑이는 전남 해남의 남녘 땅끝에서 지난
3월1일 시작한 '한걸음 한걸음'이 10일만에 광주까지 다다랐다.

'5·18'의 역사적인 현장이었던 전남도청앞 분수대에 선 한비야
씨는 쾌활한 표정이었다."발로 밟아보니 느낌이 역시 다르네요."마
침 나주를 거쳐 광주 외곽 지역(송정)을 통과할 무렵 박완서 이경
자씨 등 여류 문인들이 그녀를 격려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래서 광
주도심 지척인 무등산장에서 문인들과 함께 밤을 보낸 이틔날 그녀
를 전남도청앞에서 취재차 만날 수 있었다.

"눈치 주는 시어머니도, 기다리는 남편도, 돌볼 애들도 없는데
마음껏 느끼고 호흡하라고 격려해주셨어요. 정말 마음껏 이 국토를
느껴볼거에요.".

그녀가 보낸 그간의 '전라도'는 어떠했을까. 가는 곳마다 시골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만날 때마다 단골 메뉴는 "워매! 돈 나온가?
어쩔라고 그런다냐.". 어떤 아저씨는 "내가 누구한테도 말 안할테
니까, 힘들 것이니께 차 타요"라고 했고, 경찰차도 따라와 "태워다
주겠다"고 하더란다.

날마다 오후 5시 무렵이면 묵을 곳을 마련하기 위해 마을로 찾
아간다고 했다. 마을 초입이나 한 가운데 있는 상점에 물어보면 혼
자 사는 할머니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 옛날 인심을 고이 간직
한 할머니들, 그렇게 반가워한다고 했다.

전남 강진의 한 마을을 찾아갔더니 이웃집 할머니들이 찾아와
네 할머니와 도란 도란 얘기를 나누며 밤을 지냈다. 군불을 많이때
는 바람에 땀띠까지 났다. "왜 그렇게 다닌다냐. 혼자 살먼 나중에
외롭게 되는 것인디. 시집을 가야지. 누가 차 태워준다면 타지 말
고 알았제. 헤찰 말고(한눈팔지 말고) 가야제.".

'인정이 넘치는 고장이구나'라는 점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튿
날 떠나면서 할머니들에게 용돈이라도 주고 나올려면 한사코 받지
않고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날마다 25㎞ 가량 걸어오고 있다. 두시간에 15∼20분 가량 쉬었
다. 쪽파가 파랗게 물결 치고 있는 들판, 월출산 입구 빨간 잎안에
노랗게 올라온 수분을 담은 동백꽃, 소나무 사이로 불어와 코끝을
스치던 청자빛깔 바닷바람 등등. 외국 친구들을 만나면 설악산은
그만 두고 전라도를 찾아야 하겠다고 다짐해보이기도 했다.

"전라도에 대해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 대로
느낀 대로 전라도 사람들의 인정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방도를 따
라가고 마을 사람들과 섞여 지내는 것은 관광지만 스쳐가는 여행으
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경험을 가져다 주더군요.".

그녀가 시작한 발길은 해남 땅끝에서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
까지 이어진다. 장장 1000㎞. 강진 영암 나주 광주 담양 순창 임실
진안 무주 영동 장수 문경 제천 평창 양양 속초 등지를 거치며, 사
이 사이에 월출산 문경새재 월악산 오대산(진고개) 설악산 등 험한
산길도 넘는다.

그녀에게서 무작정 걷기만 하는 무모함을 상상하기 어려웠다.보
병부대에서 군복무를 해서 행군이라면 큰 소리(?)할 수 있는 기자
로서도 '장거리 도보'의 비결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집에
실을 꿰는 것은 기본. "베이비 파우다를 잠자리에 들기 전 물집 터
진 곳에 바르죠. 참을 수 없을 만큼 뜨거운 물에 발목을 10분간 담
그고 다시 30초 동안 찬물에 담그죠. 그러면 피로가 확 풀려요."기
자도 한 수 배웠다.

듣고보니 빨간 배낭(10㎏)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해졌다. 아
예 보여달라고 했다. 하얀 천으로 직접 만든 간이침낭, 30만분의1
전국 도로여행지도, 비올 때 덮는 비닐커버, 기침하거나 머리가 아
프면 손바닥에 붙이는 지압봉, 감보다 100배의 비타민 가 들어있
다는 감잎차, 라면도 끓이고 밥도 담아 먹고 양치질에도 사용하는
범랑 재질로 된 약간 큰 컵, 밤마다 무릎에 감는 압박붕대, 카드와
현금을 보관하기 위해 직접 만든 아주 작은 전대,바람이 심하게 불
거나 비가 올 때 뒤집어 쓰면 보온 효과가 큰 은박지(135㎝×210㎝,
420g), 목도리와 타올, 치마도 되고 머리에도 감는 천, 양말과 속
옷, 화장품, 카메라, 머리빗 등. 세계 일주를 통해 얻은 경험들이
녹아든 품목들이었다.

한씨는 "작년 7월 세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인도나 몽고
등의 나라는 지도만 보고도 어딘지 훤히 알 수 있던 내가, 나주와
전주의 위치를 헷갈리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그
래서 국토 종단을 시작한 것.

그녀는 지난 6년간 세계 65개국을 '두 발로' 걸어다녔다. 그녀
가 겪었던 지난 6년간의 경험들은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도서출판 금토)이란 4권의 책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처
음 세계여행을 떠났던 것은 지난 93년 7월. 서울서 잘 나가던 외국
계 홍보회사 차장을 갑자기 그만 두고서였다.

그녀는 그 이유를 "더 늦기 전에 가장 원했던 것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돌아가신 아버지께 뒤늦게 나마 약속을 지켜 기쁘다"
고 했다. 어린시절 아버지는 4남매와 함께 우리나라와 세계지도를
펴놓고 나라와 도시, 산과 강의 이름찾기 놀이를 했고, 여러 나라
얘기들을 수없이 들려주셨다고 한다. 그녀는 세계지도를 펴놓고
"이곳을 모두 다녀보고 싶다"고 했고, 아버지는 그때 "우리나라까
지 전세계를 네 두 발로 걸어봐라"고 북돋웠다고 했다. 아버지(한
남희)는 조선일보 정치부기자를 지냈던 분으로 유신반대 활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난 뒤 심장마비로 일찍 돌아가셨다.

그녀는 서울 태생으로 숭의여고를 졸업한 뒤 대학 입시에 실패
한뒤 5년 동안 과외 선생님과 음악실 DJ 영어 번역 등으로 5년을
보냈다. 대학생들보다 영어 번역 솜씨가 뛰어나다고 평가받으면서
도 번역료를 적게 받는 수모(?)을 겪고 난 그녀가 몇개월간 이를
악물고(?) 공부해 홍익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음악실에서 연을 맺
은 미국인 부부의 후원으로 미국 유타대에서 국제홍보학 석사학위
를 하고 귀국, 외국계 홍보회사에 취업했다. 유학시절 배낭 여행을
통해 세계 일주의 꿈에 한발 다가선 그녀였다. "어차피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다른 것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회
사를 그만 두고 도전했던 것.

"어떤 사람은 저더러 노는 일에 왜 목숨을 거느냐고 말합니다.

저는 세계일주가 하나의 꿈이었죠. 거창하지 않더라도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것 아닙니까. 국토 종
단도, 세계 일주도 한 걸음부터 시작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죠.하
나씩 실천에 옮길 때 인생의 목표를 성취하는 거죠.".

그녀가 소중하게 여기는 표현중의 하나는 '늦게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말고, 하다 중간에 그만 둘 것을 걱정하라'.

그녀는 이번 여행을 끝낸 뒤 중국 어학 연수를 떠날 예정. 내년
부터는 국제 난민기구에서 일하기로 했다. 세계 일주하면서 곳곳
난민촌에서 굶주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위해 일하겠
다고 다짐했기 때문. 사랑(결혼)은 교통사고처럼 예상치 못하는 가
운데 다가설 것이라고 점쳤다.

"두 사람이 누가 많이 나무를 하느냐 내기를 했어요. 한 사람은
줄곧 쉬지 않고 일했고, 다른 한 사람은 쉬엄 쉬엄했어요. 그런데
쉬면서 한 사람이 더 나무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죠. 그랬
더니 '자네가 도끼질만 계속할 때 나는 쉬면서 도끼를 갈았다네'라
고 말했다는 도끼이야기 아시죠?".

그녀는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때로 도끼날을 세우는
여유도 가져야 한다며 다시 배낭을 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