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지난 100년동안 어떨게 살았을까
한국역사연구회·역사비평사·각 9,000원.

우리나라에 처음 공중용 전화가 설치된 것은 1902년이었다. 전화 가입
자는 총 24명이었는데, 조선인은 2명에 불과했다. 점잖은 체면에 어떻게
전화통 들고 남과 대화를 나누며, 게다가 무례하게 어른을 전화로 불러내
느냐는 생각들이 지배적이었다.

'독립신문' 창간호 광고 중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가메야 회사/서울
정동/ 외국 상등 물건을 파는데 물건이 다 좋고 값도 에누리 없더라.".

그로부터 불과 1백년.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할아버지 대 일조차 모르
고 살고 있다. 개개 문중 족보는 있는데 사회 공동체 족보는 없는 셈이다.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전2권·역사비평사간)는 이
같은 집단적 과거 망각증에 대한 문제 제기다. 겉잡을 수 없는 서세동점
과 식민지, 한국전쟁, 숨가쁜 근대화를 겪으며 과거와 주변을 둘러볼 틈
이 없어서였을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등의 책을 통해
역사 대중화의 모범적 성과들을 쌓아온 젊은 역사학 연구단체인 한국역사
연구회는 지난 100년 한국인의 생활과 문화를 중심으로 '근대 문물의 고
고학' 기행을 시도했다.

대학 강사나 조교수급 필자들이 집필한 글들은 모두 34편. 1898년 전차
가 처음 도입됐을 때 이것 타는 재미에 빠져 파산한 사람이 있었다는 얘
기부터 만석꾼의 형성과 몰락, 서울내기의 변화, 패션의 변화, 외식 문화
의 변천, 달동네의 형성, 심지어 지역감정의 추이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
대'의 자화상이 쉽고 흥미있게 그려졌다.

김상태씨(서울대 강사)가 쓴 '지역감정은 언제부터'에 따르면 적어도
100년 전에는 영-호남 지역 감정이란 없었다. 대신 대한제국기 독립협회
의 최고 지도자였고 개화선각자였던 윤치호의 일기(1929년)를 보면 이런
귀절이 나온다.

"내 딸 문희의 결혼식이 있었다. 이 결혼이 서울 명문가에서 평양 출
신을 사위로 맞는 첫번째 사례이므로, 난 조롱과 비난의 표적이 될 것이
다. 그러나 내가 현명했다는 것을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다.".

1886년 2월22일자 한성주보에 실린 독일 무역상 세창양행 광고 문안은
이렇다. "저희 세창양행이 조선에서 개업하여 호랑이 수달피 검은단비 소
말 여우 개 등 각종 가죽과 사람 머리카락 돼지 갈기철 조개 소라 옛동전
등 여러가지 물건을 사들이고 있습니다.…아이나 노인이 온다해도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저자들은 머릿말 첫 마디로 "역사에 비약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IMF의 시기에 이 책을 낸 의도도 가늠할 수 있다. 저자들은 말한다."우
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이제 한번쯤 되
돌아 볼 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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