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서기'. 이것은 러시아 생활의 필수적 요소다. 간단한 서류 한장 떼
려 해도 몇시간 줄서기 일쑤다. 최근 러시아 금융대란 때문에, 은행들 앞
은 예금인출 하려는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또 많은 자동차 운전
자들이 공식벌금보다 더 많은 액수를 교통순경에게 건네주고 그 자리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도 '줄' 때문이다. 기자도 약 5달러짜리 교통위
반딱지 때문에 장장 8시간을 줄선 악몽같은 체험을 했다.

따라서 러시아에서는 독특한 줄서기 문화가 발전해 있다. 모든 사람이
줄에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차례가 임박한 몇명만 줄에 서 있고, 나
머지 사람들은 그냥 벤치에 앉아서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환담하면서 순
서를 기다린다. 자신의 앞사람이 누구인지만 확인하면 된다.

이에 러시아인들은 도착 즉시, 우선 "크또 빠슬레드니?"(누가 마지막
입니까?)라고 묻는다. 그러면 누군가가 "야!"(저요!)라고 대답하면,그 사
람에게 "야 자 바미"(제가 당신 다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순서를
확인한다. 물론 다음 사람이 와서 "끄토 빠슬레드니?"라고 물으면, "야!"
라고 대답해서 그 사람이 다음 순서라는 사실을 확인해 줘야 한다.

또 하루 정도에 해결될 줄이 아닐 경우에는 명단이 작성된다. 도착한
즉시 명단에 자기 이름을 올려 놓아야 한다. 그리고 대략 언제쯤 자신의
순서가 될는 지를 확인한 다음 그에 맞춰 와야 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없는 사이에 자신의 순서가 지나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점
이다.

이런 줄서기는 대부분 할머니 몫이다. 러시아 할머니들은 깔고 앉을
신문지와 두꺼운 소설책을 준비하고 줄서기에 나간다. 이 할머니들은 서
로 줄에서 금새 친해진다. 자식, 손자 이야기는 곧 정부 비판으로 이어지
곤한다. 할머니들이 러시아에서 가장 정치의식화된 반정부 계층이 된 이
유중의 하나도 '줄서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