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4대문 나간적없어/"눈감고 종로구 지도그릴수 있다" 예
술가 부부 로 유명한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교수(58)와 소설가 한말숙
(63)씨가 최근 서울 토박이 부부 로 다시 유명해졌다. 서울시가
정도 6백년을 맞아 뽑은 자랑스런 서울시민 6백명중에 부부로는 유일
하게 나란히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비원앞 국립국악원에서 삼청동 총각
과 신교동 처녀로 만나 동숭동 서울대학교에서 연애하며 가회동에 신접살
림을 차린 이들은 여지껏 강북을 떠나본 적이 없는 순서울토박이다.
"50년전 서울이오? 그때만해도 시골적인 정서가 넘쳤지요. 행길에는
잠자리가 날아다니고, 삼청동 골짜기에서 가재와 달팽이를 잡아다 집에서
키우곤 했으니까요. 서울 수돗물은 정말 맛있었고, 서울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새파랬습니다. " 가회동에서 태어난 황교수는 안국동-계동-
삼청동을 거치며 40년동안 사대문밖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종로토박이.
그의 생가는 현재 가회동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어 남아있지만, 그가
살던 계동집 자리엔 현대건설이 들어서 옛모습은 자취도 없다.부인 한씨
는 공무원인 부친때문에 경남 사천에서 태어났지만 대대로 서울에서만 살
아온 서울내기다. 인왕산 바위가 바라다보이던 신교동집에서 통의동 백
송옆을 매일 오가며 중학교를 다닌 그는 회현동-평동에서 살다 삼청동으
로 시집왔다. "통의동 백송은 터만 남아있고, 평동의 친정은 고려병
원 주차장이 되었다"는 그의 말에서 서울의 변화 를 실감한다. "
종로구는 눈을 감고 지도를 그리라고 해도 그린다"는 이들 부부는, 그
러나 서울은 세계로 라는 표어귀절을 생각나게 하는 신서울인이다.
황교수는 65년 하와이에서 첫 가야금 음반을 내고 그동안 20여개국에
서 연주회를 가져 우리 소리를 세계에 전파해왔고, 한씨의 소설 아름
다운 영가 는 현재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어 있기 때문이다. 83년
영역된 아름다운 영가 는 93년 폴란드어로 번역되었고, 금년말 스
웨덴 판이 나오며, 현재 불어로 번역중에 있다. 8학군 열풍에도 흔들
리지 않은 고집스런 강북내기인 이들은 네자녀를 모두 강북의 공립학교를
거쳐 서울대와 이화여대에 합격시켰다. "자랑스런 서울시민으로 왜
뽑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자랑스런 서울시민이 되고 싶네
요." 말이없는 황교수와 대조적으로 입심이 좋은 한씨가 밝힌 소감이다
. 박성희기자 *88세 임귀동할머니/친정집안 32대 7백년 거주/"
정직하고 고지식한게 서울사람" 29일 서울정도 6백년을 맞아 자랑
스런 서울시민 6백인 가운데 한명으로 뽑힌 임귀동할머니(88.중구
황학동 2252). 서울의 역사보다 1백년 넘는 7백여년을 서울에서만
살아온 32대 서울토박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이날 오후 타임캡슐 매
설 행사장에 초청돼 김영삼대통령과 나란히 버턴을 누르는 영광을 안았다
. 본관이 밀양(밀양)인 임할머니는 자신 뿐 아니라, 친정집 가문 자
체가 7백여년간 4대문을 벗어나 산적이 없는 원조 서울사람. 임씨
가문의 역사가 곧 서울의 역사라고 할만하다. "구한말 당시 탁지부(
현재 재무부) 사무관을 지낸 부친(임시택)으로부터 친정집안이 조선이
개국하기 전인 1200년대에 종로구 사직동에 정착해 32대째 살아왔다
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고 임할머니는 말했다. "19
06년 사직동에서 태어나 진명여고보를 졸업한 17세때 양정고보 졸업생
인 신랑(박우식)과 얼굴도 못보고 혼인했어. 시댁은 다동의 천석꾼 집
안으로 이곳에서 3남2녀를 낳고 한 20년 살았으나, 일제때 재산을
대부분 빼앗긴후 황학동으로 이사왔지." 황학동의 재개발대상인 25평짜
리 낡은 집에서 독신인 둘째아들 박상범씨(57)와 둘이 살고있는 임할
머니는 어린 시절로 화제가 돌아가면 얼굴을 덮은 주름살이 펴진다.
"친정 할아버지는 정3품 통정대부 벼슬을 했고, 장씨 성의 고모부님은
호조판서를 지냈지. 서울에서는 알아주는 집안이었어. 고모부님이 남양
군수로 부임할때 고종황제가 하사한 의거리장(관복을 거는 옷장)은 자식
이 없던 고모부가 내게 물려줘 지금까지 보관해왔어. 다섯 오라버니들이
3.1만세운동때 탑골공원등에서 사용한 태극기도 갖고 있어." 서울
토박이는 원래 어떤 사람이냐는 물음에 임할머니는 "정직하고 고지식한게
서울토박이"라고 설명했다. "쌀 한되가 7푼5리인 시절 7푼밖에 없
어 밥을 못해먹으면서도 5리를 꾸러 다지니 않는게 서울사람이야. 남에
게 피해주지 않고 꼿꼿하게들 살았지." 임할머니는 10여년 전부터 신
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공책에 옮겨적는 일이 취미다. 동네 유래 얘
기, 서울 6백년 얘기등이 할머니가 좋아하는 기사들이다. 박중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