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우크라이나 뉴스가 뜨겁습니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전 세계가 미국과 러시아 간 외교 협상을 지켜보고 있죠.

중국은 이런 상황이 즐거운 모양입니다. 대만을 둘러싸고 중국과 대립해온 미국이 이제 우크라이나 전선에서도 러시아와 마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거죠. 아무리 초강대국이라고 해도 서태평양과 동유럽이라는 양대 전선에서 중·러와 동시에 전쟁을 하는 건 버거운 일 아니냐는 겁니다.

러시아군 장갑차들이 1월27일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남부 로스토프 지역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일 항모 연합 훈련의 이유

외교부 등 정부 당국은 논평을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웨이신·웨이보 등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애국주의 이론가들은 희희낙락하는 분위기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이 기회에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자는 주장까지 하더군요.

미 국방부가 공개한 필리핀해 미일 해군 합동훈련 장면. 이 훈련엔 양국의 항모 급 대형 함정 5척과 F-35C 스텔스 전투기 20여대가 동원됐다. /미 국방부

미 국방부는 지난 22일 핵 추진 항공모함인 칼빈슨 함과 링컨 함, 대형 강습상륙함인 아메리카 함과 에식스 함 등이 일본 헬기 항모 휴가 함과 함께 대만과 가까운 필리핀 해역에서 연합훈련을 하는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이 훈련엔 항모 급 대형 함정 5척이 동원됐죠. 칼빈슨 함과 링컨 함에 각각 10대씩 탑재된 F-35C 스텔스 전투기도 훈련에 참여했습니다. 중국군이 우크라이나 위기를 이용해 준동하는 걸 막기 위해 한바탕 무력 시위를 했죠.

◇대국 사이에 낀 운명

우크라이나와 대만은 지정학적으로 공통점이 많습니다. 두 나라 모두 미국과 중·러의 전략적 이익이 교차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죠.

우크라이나는 서쪽의 나토(NATO)와 동쪽의 러시아가 맞부딪히는 곳이고, 대만은 미국이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는 서태평양과 중국 대륙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두 대국이 관할권을 주장하는 것도 비슷해요.

우크라이나는 옛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로 러시아계 주민들이 다수 거주합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자기 관할권 안에 있는 나라로 봅니다. 대만 역시 중국이 중국 영토의 일부라고 주장하죠. 그러다 보니 두 나라는 자국의 독립과 안보를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우크라이나 지켜본다”

사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국경지대로 병력을 집결하기 시작한 작년 말 미국 내에서도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에 동시에 대처해야하는 데 대한 우려가 나왔습니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힘을 합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시험대 위에 올렸다는 거죠.

조 바이든 대통령이 1월19일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당시 러시아가 국경을 넘는 전면전 성격의 침략을 감행하면 용납하지 않겠지만, 소규모 침입에 대해서는 어떤 제재를 가할지를 놓고 나토 회원국 간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죠. 작년 말에는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파병할 계획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발언은 중·러를 상대로 두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벌이는 부담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쪽을 포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으로 이어졌죠.

1월13일 한미연구소(ICAS) 온라인 심포지엄에 참석한 커티스 스캐퍼로티 미국 예비역 대장이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한미연구소

미군은 두 전선에서 동시에 싸워 승리할 역량이 있으며, 중국의 대만 무력 통일 시도를 막기 위해서라도 우크라이나에서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있어요.

나토군 최고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을 지낸 커티스 스캐퍼로티 미국 예비역 대장은 1월초 한미연구소 주최 온라인 심포지엄에서 “우크라이나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외교관들과 행정부 관리들이 공개적으로 군사 옵션 포기를 밝히는 건 지휘관을 지낸 사람 입장에서 당혹스러운 일”이라며 “시진핑 주석과 이란이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푸틴 대통령의 군사 도발에 밀리는 인상을 주면, 대만과 중동에서도 비슷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올해 대만 침공은 어려울 듯

사정은 이렇지만, 중국이 당장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중국은 곧 시진핑 주석 재임기의 치적인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죠. 잔칫상을 앞에 두고 전쟁이 일어나기를 원하진 않을 겁니다. 올 연말에는 시 주석의 3연임을 결정하는 20차 공산당 당 대회도 있어요. 내부 정리를 하기도 바쁜 시점이어서 대만 무력 통일에 나설 가능성은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그래도 미국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주의 깊게 지켜볼 겁니다. 수년 뒤에는 대만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요.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신에 올라온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글들. 왼쪽 글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만을 무력 통일할 절호의 기회'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웨이신 공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