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현지시각) 한미 양국 정상회담의 오찬으로 크랩 케이크이 나왔다. 미 백악관 오벌오피스 야외테라스에서 문대통령과 바이든대통령이 크랩 케이크를 사이에 놓고 오찬 환담을 나누고있다/트위터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 시각) 열린 오찬 겸 단독 정상회담에서 ‘메릴랜드 크랩 케이크(Maryland crab cake)’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메인 요리로 대접했다죠. 이것이 여기저기 기사로 나오면서 크랩 케이크가 화제가 됐죠. 제게도 “크랩 케이크가 뭐냐”고 묻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크랩 케이크를 한 마디로 압축해 말하라면 ‘게살 동그랑땡’ 또는 ‘게살 완자’라고 하겠습니다. 미국 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입니다. 국내에서도 어렵잖게 맛볼 수 있습니다.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 호텔 ‘스테이크 하우스’ 등 스테이크 전문점이나 미국 음식을 주로 내는 식당 메뉴판에서 볼 수 있지요.

크랩 케이크는 스테이크 등 메인 요리에 앞서 애피타이저(전채)로 먹는 게 일반적입니다만, 건강이나 체중 관리를 위해 가볍게 먹는 이들이 늘면서 문·바이든 대통령처럼 메인으로도 많이 먹습니다.

케이크라고 하니 ‘무슨 케이크를 메인 요리로 먹느냐’는 댓글도 있던데, 이는 오해입니다. 케이크는 달콤한 디저트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단단하게 뭉친 덩어리라는 의미도 있지요. 어묵을 영어로 ‘fish cake(피시 케이크)’라고 부르는 걸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크랩 케이크를 인터넷 검색하면 엄청나게 많은 레시피가 쏟아집니다.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주 재료는 당연히 게살이고, 게살을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동그랗고 납작한 모양으로 빚어서 기름을 넉넉히 두른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지져냅니다.

게살만으로는 잘 뭉쳐지지 않기 때문에 빵가루나 곱게 빻은 크래커와 달걀을 섞는 것까지는 대부분 레시피가 같습니다. 여기에 맛을 내기 위해 마요네즈, 머스터드(양겨자), 쪽파와 비슷한 차이브 등 어떤 양념과 허브를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크랩 케이크/delish.com 인터넷 캡처

문 대통령이 드신 크랩 케이크는 ‘메릴랜드’라는 지명이 붙었는데요, 이는 미국에서 메릴랜드가 크랩 케이크의 원조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미국 동해안 체서피크 만(Chesapeake Bay)은 대표적인 게 생산지입니다. 미국에서 ‘블루 크랩(blue crab)’이라 부르는 꽃게가 많이 잡히죠.

체서피크 만은 북쪽은 메릴랜드 주에, 남쪽은 버니지아 주에 걸쳐 있습니다. 그래서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에서는 예전부터 꽃게를 즐겨 먹었습니다. 꽃게 살을 발라서 만든 크랩 케이크가 대표적인 음식이죠. 역사가 길지 않은 미국에서는 꽤 전통 있는 음식으로 여겨집니다.

꽃게는 맛있지만 금방 상합니다. 냉동·냉장시설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인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체서피크에서 잡힌 게는 멀리 팔 수 없었습니다. 주로 메릴랜드와 버지니아 등 인근 지역에서 소비됐죠.

이후 체서피크 꽃게가 미국 전역으로 유통되면서 크랩 케이크도 전국적으로 즐기는 음식이 됐습니다. 그러면서 크랩 케이크는 메릴랜드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조기가 서해 전역에서 잡히지만 과거 영광을 중심으로 말려져 굴비로 유통되면서 지금까지 ‘영광 굴비’가 이름을 날리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죠.

다른 지역의 크랩 케이크와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습니다만, ‘메릴랜드 식(式)’이라 불리려면 눈으로 보거나 입에 넣고 씹었을 때 큼직한 게살 덩어리가 확연히 느껴져야 한다네요. 게살 함량이 높을수록 빚기가 어렵고, 부칠 때 부서지기 쉽고, 원가도 높아지지요. 그래서 싸구려 식당일수록 게살은 적게 들어가고 빵가루나 크래커 가루 등 부재료 비율이 높아집니다. 맛이 덜한 건 당연하겠죠.

한국 정부와 여당에서는 크랩 케이크가 해산물을 좋아하는 문 대통령의 식성을 고려한 메뉴이고,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오찬 때 먹은 햄버거와 비하면 괜찮은 대접이었다고 만족하는 듯합니다. 크랩 케이크가 햄버거보다 더 깍듯한 대접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말씀드린대로, 크랩 케이크는 상당히 캐주얼한 음식이니까요. 제대로 만든 햄버거가 그리 격 떨어지는 음식도 아니고요.

오찬이 몇 개의 코스로 구성됐는 지, 메인에 앞서 전채로는 뭐가 나왔으며 후식으로는 뭐가 나왔는지까지 살펴봐야 얼마나 잘 대접 받았는지 파악할 수 있을 듯합니다. 와인 등 음료는 뭐였는지까지 살펴본 다음에야 오찬의 격(格)을 제대로 논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여기까지는 찾을 수가 없네요.

뭘 먹었느냐가 대수겠습니까. 물 한 잔을 나눠 마시더라도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고 어떤 합의가 이뤄졌는지가 중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