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8일 충북 괴산군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열린 '2023 학군장교 통합임관식'에서 신임장교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이번에 임관한 소위는 육군 2999명, 해군 102명, 공군 138명, 해병대 129명이다. /육군 제공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면서 그에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군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일까요? 과연 안중근 의사께서도 이렇게 생각하셨을까요?’

지난달 말 군 초급 간부로 추정되는 사람이 익명으로 군내 문제 제보가 자주 올라오는 한 소셜미디어에 게재한 글이다. 그는 “유능한 인재들은 더 이상 희생과 열정 페이만을 강요하는 곳에서 장기 복무를 희망하지 않을 것이고 군문(軍門)을 박차고 나갈 것”이라며 이렇게 적었다. 그가 글을 올린 것은 당직 근무비(수당) 문제 때문이다. 당직은 군 특성상 격오지 등 열악한 환경에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수당은 공무원들의 평일 3만~5만원, 휴일 6만~10만원에 비해 턱없이 적어 큰 불만의 대상이 돼왔다. 현재 군인·군무원의 당직 수당은 평일 1만원, 휴일 2만원이다.

그래픽=백형선

지난해 7월 초 충남 계룡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관으로 열린 전반기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국방부는 간부들의 당직 근무비를 평일 1만원에서 3만원, 휴일 2만원에서 6만원으로 대폭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군내에선 군 통수권자인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직접 주재한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공식 발표한 사안이어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정부 예산 부처의 반대로 끝내 올해 예산에 반영되지 않아 당직 근무비 인상은 무산되고 말았다. 당직 근무비 인상에 필요한 예산은 740여 억원이었다. F-15K 전투기 한 대 값(1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최근 군내에선 ‘육군 16감사 1사죄’라는 소셜미디어 글이 유행하기도 했다. 초과 근무 등 열악한 근무 환경에 비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초급 간부의 현실을 신랄하게 반어법으로 풍자한 글이다. ‘3년간 월평균 70시간 24분을 초과 근무해도 후방 지역이라는 이유로 월당 27시간만 인정해 조국 수호에 지역 차별을 두는 육군 초과 근무 체계에 감사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지난 3월 페이스북 ‘육군 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는 자신을 육군 예하 부대에서 복무 중인 중위라고 소개한 A씨가 곰팡이가 가득하고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열악한 상황을 제보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육대전’은 급식 문제 등 주로 병사와 관련된 사안들에 대한 제보가 이뤄졌지만 올 들어선 군 간부, 특히 초급 간부와 관련된 사안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병사가 아닌 초급 간부들이 소셜미디어에 각종 문제점을 공개하고 군 수뇌부와 정책을 비판하는 모습은 과거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군의 중추이자 기초라는 초급 간부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초급 간부가 무너지면 1000억원짜리 스텔스기도, 1조원짜리 이지스함도,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하는 한국형 3축 체계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초급 간부 위기는 급격히 떨어지는 장교 지원 경쟁률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국회에서 열린 ‘초급 간부 복무 여건 개선 세미나’에서 권현진 한국국방연구원(KIDA)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학군·학사 장교 경쟁비(선발 인원 대비 지원자 비율)가 2015년의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고 공개했다.

학군 장교는 7년 만에 경쟁비가 4.8에서 2.4로, 학사 장교는 5.8에서 2.6으로 각각 떨어졌다. 민간 모집 부사관 지원자는 2020년 이후 하락 추세이며 지난해 장갑차, 야전 포병, 전술 통신, 화생방 특기의 경쟁비는 0.5~0.9에 불과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이종섭 국방장관도 “초급 간부 지원율은 계속 감소하고 각군 사관학교의 중도 이탈자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해군 부사관의 해경 이직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특단 조치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고 군 수뇌부가 직접 심각성을 인정하고 ‘특단 조치’를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초급 간부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병사에 비해 초임 장교의 의무 복무 기간이 너무 길다는 점이다. 초임 장교의 70%를 차지하는 ROTC 의무 복무 기간은 28개월로, 1968년 이후 52년간 변화가 없었다. 반면 병사들의 복무 기간은 1968년 36개월에서 절반인 18개월로 줄었다. 둘째, 병사 월급의 급격한 인상이 지적된다. 오는 2025년 병장 봉급이 200만원으로 늘어나게 됨에 따라 초급 간부들과 병사들의 봉급 차이는 급속도로 줄어들게 됐고 일각에선 사실상 역전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셋째 복무 여건이 꼽힌다. 휴가 사용 여건, 조직 문화, 격오지 근무 등을 고려할 때 군은 MZ세대가 선호하는 좋은 직장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군 당국 분석에 따르면 군 특성상 24시간 현행 작전을 위해 상시 근무 체계를 유지하는 근무자가 1만9000여 명인데 이 중 약 80%(1만5000여 명)가 초급 간부다.

국방부는 초급 간부 복무 여건 향상을 위해 하사 호봉 승급액, 초급 간부 성과 상여금 기준 호봉, 당직 근무비를 공무원 수준으로 인상하고 단기복무장려금·장려수당을 증액하며, 간부 숙소를 1인 1실로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방안이 실현되려면 예산 지원이 필수적인데 아직까지 예산 부처와 협의가 끝나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당직 근무비처럼 ‘공약(空約)’으로 끝날 경우 초급 간부들의 군심(軍心) 이반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근본적 인식 변화와 중장기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급 간부들도 병사와 같은 MZ세대인 만큼 MZ세대 성향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또 ‘대량 획득-단기 활용-대량 방출’이라는 현행 초급 간부 운용 방식을 ‘소수 획득-장기 활용’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현재 낮은 상태인 장기 복무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영진 중앙대 교수는 “장기 복무율을 높일 경우 직업 안정성이 올라가기 때문에 지원율도 높아질 것”이라며 “장기 복무가 늘어나면 초급 간부 수준 저하 문제도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병사 월급 인상따라 초급 간부 지원 의사 23~41% 감소

오는 2025년까지 병사 월급 200만원 인상이 추진되면서 이것이 군 초급 간부 지원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 것인가가 논란이 돼왔다. 지난해 12월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이에 대해 처음으로 1만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공개했다.

민광기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병 급여 인상이 초급간부 지원 의사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4월 각 지방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7739명 중 5407명(69.9%)은 병사, 207명(2.7%)은 장교, 그리고 160명(2.1%)은 부사관으로 각각 복무하길 희망했다고 밝혔다. 병역 이행을 위해 신체검사를 받은 인원 가운데 간부를 희망하는 사람이 전체의 4.8%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이는 2016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그 비율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당시 응답자 중 장교 7.8%, 부사관 3.5%로 간부 희망자는 전체의 11.3%였다. 민 연구원은 이에 대해 “2016년 이후 복무 기간 단축, 급여 인상, 휴대전화 사용 등 병사 처우 개선에 따른 영향이 많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실제 2001년과 올해 계급별 월급을 비교해보면 장교(소위 1호봉)가 57만원에서 176만원으로 3.1배, 부사관(하사 1호봉)이 49만원에서 171만원으로 3.5배 증가할 때 병사(병장)는 2만원에서 68만원으로 34배나 뛰었다.

특히 병사 월급이 인상될수록 간부 희망자도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사 월급이 114만원, 160만원, 200만원으로 인상될 경우 장교 희망자는 80.2%, 69.1%, 58.5%로, 부사관 희망자는 90.7%, 86.4%, 76.5%로 각각 감소하는 것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