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 당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른쪽은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 /이덕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7일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 당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2021년 전대에서 송영길 전 대표 관계자들이 20~40명 안팎의 의원·당 관계자에게 불법 자금을 전달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지 닷새 만이다. 프랑스에 체류 중인 송 전 대표는 이와 관련, “이재명 대표와 어젯밤 통화하면서 충분한 설명을 했고 이야기를 들었다. 조만간 귀국 문제 등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면서도 돈 봉투 살포 의혹에 대해서는 “처음 말한 것처럼 나는 잘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애초 이번 의혹에 대해 ‘검찰의 기획 수사’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엄정 대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총선을 1년 앞두고 당 전체가 ‘돈 봉투 논란’에 끌려들어 가선 안 된다는 판단에서 지도부가 ‘사과 모드’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 대표는 회의 시작 전 지난 2021년 전당대회 관련 검찰 수사로 불거진 이른바 '돈 봉투 의혹'에 대해 당 대표로서 사과했다. /2023.04.17 이덕훈 기자

이 대표는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이같이 사과하고 “당은 정확한 사실 규명과 빠른 사태 수습을 위해서 노력하겠다”며 “이를 위해서 송영길 전 대표의 조기 귀국을 요청했다”고 했다. 이 대표는 당 차원에서는 사실 규명에 한계가 있다며 수사기관에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했다. 이 대표는 “이번 사안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서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도 확실하게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기도 했다.

이 대표는 그러나 최고위 후 취재진이 던진 “이 대표 본인 의혹은 정치 탄압으로 규정했는데” “이 대표 의혹과 돈 봉투 의혹은 다르게 보는 건가” “송 전 대표에게 답변 온 게 있나” 등의 질문에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민주당 최고위는 16일 저녁, 17일 아침까지 연달아 비공개 회의를 열고 이 문제 대응 방침을 논의했다. 지도부는 이와 별개로 주말 동안 개별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대응 방향에 대한 의사도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도부 관계자는 “생생한 녹취 파일이 며칠째 계속 전파를 타는 상황이라 일선 의원들 사이에 ‘이러다 다 죽는다’는 분위기가 격화됐다”면서 “일단 지도부 차원에서 분명한 입장 표명으로 일단락을 짓는 게 좋겠다는 데 뜻이 모였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의혹이 처음 불거진 후 며칠간은 ‘진상 확인이 먼저’라는 분위기였지만, 당내에서도 침묵으로 비호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으며 지도부를 압박했다는 것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이 대표는 상대적으로 차분히 대응하자는 분위기였다면, 박홍근 원내대표가 특히 강경한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오간 돈봉투 의혹과 관련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서는 당내 진상조사단 설치, 논란이 된 의원들에 대한 탈당 요구·출당 조치도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지도부 인사는 “출당·탈당 언급도 상당히 나왔다”며 “특히 박빙 싸움을 하는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말했다.

일단 민주당은 당분간 송 전 대표 측에 결자해지를 요구하면서 공정한 검찰 수사를 동시에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 오는 7월까지 프랑스에 머무를 계획이던 송 전 대표는 조만간 파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조기 귀국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돈 봉투 의혹에 대해 송 전 대표는 이날 언론에 “처음 말한 것처럼 나는 잘 모르는 일이고 어떻게 진행됐는지 검찰이 조사하고 있다니 그 결과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들어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느냐”고 했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 13일(현지시간) 파리정치대학에서 열린 ‘한국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유사성’ 특강에서 송 전 대표가 참석한 학생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뉴스1

한 중진 의원은 “지난 당내 경선과 관련된 사안을 현재의 당이 뒤집어쓸 이유는 없다”며 “송 전 대표가 일정 부분 책임을 지도록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당 차원의 진상 조사 요구도 반려됐다고 한다. 당 차원에서 조사에 나선다고 해도 사실관계를 규명하기 어렵고 변명의 장(場)만 만들어줄 공산이 커, 결국 당의 책임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재선 의원은 “출당·탈당 등의 조치는 수사기관을 통해 좀 더 확인된 뒤 해도 늦지 않다”며 “지금 당장이야 실명이 나온 5명 안팎이지만, 검찰 수사 행태를 보면 규모가 어느 정도로 커질지 모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수사 규모에 따라 수십 명이 출당·탈당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당장은 ‘송영길 캠프’ 선에서 책임지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언제든 민주당 책임론은 다시 불거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돈 봉투 명단’으로 이름이 거론되는 인사들은 대부분 “사실무근”이라며 엄정 대응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