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마무리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여야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이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수사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며 소모전을 벌였다. 야당 의원들은 답변하는 국무위원들을 향해 비아냥거리거나, 윽박 지르고 말꼬리 잡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그러나 정의당 류호정 의원, 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각각 ‘비동의 강간죄 도입’ ‘화물연대 사업자 판단’과 관련해 국무위원들과 심층 질의 응답을 했지만 고성이나 비난, 조롱은 없었다. 두 사안 모두 정부와 야당의 입장은 명확히 갈리고 이를 두고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 양측은 질의를 통해 왜 이런 입장 차이가 있는지 차분히 설명했다. 상대 의견을 경청하며 대안을 제시했고 접점을 찾으려 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뉴시스

◇류호정 “김건희·천공 얘기 안 하겠다”

류호정 의원은 8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답변하기 위해 단상으로 나오자 “저는 김건희 여사나 천공 얘기 같은 건 안 하고 정책 질문만 할 테니까 너무 전투력 발휘 안 하셔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류 의원은 비동의 강간죄 입법 필요성을 주장했고, 한 장관은 반대 의견을 내며 맞붙었다. 비동의 강간죄는 형법상 강간죄 성립 요건을 ‘폭행·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판단하는 내용이다. 도입 이야기가 나오자 마자 젠더 갈등으로 번지면서 제대로 된 토론조차 이뤄지지 못한 문제였다.

류 의원이 “한 장관께선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반대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한 장관은 “이 법을 도입하면 동의가 있었다는 입증 책임이 검사가 아니라 해당 피고인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며 “범죄를 의심받는 사람이 상대방 동의가 있었다는 걸 입증 못 하면 억울하게 처벌받는 구도가 된다”고 했다. 류 의원은 “저도 반대 측 입장을 충분히 듣고 서로 건설적인 토론을 해야 이 법안이 통과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발의자로서 굉장히 절실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 장관이 “저는 의원님 유튜브도 다 봤다”며 관련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류 의원은 “다음에 토론회 열 테니까 그때 법무부에서 꼭 나와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입증 책임’ ‘판례’ ‘해외 사례’ ‘성범죄 입법’ 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정책적 대안 제시로 맞설 뿐 서로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7일 공정거래위가 최근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모인 화물연대를 사업자 단체로 판단한 근거에 대해 물었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이 “구성원 대부분이 직접 또는 위탁을 받아 화물 운송 사업을 운영하는 사업자 성격 때문”이라고 하자, 이 의원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화물차 기사에게 노동자 성격이 있다는 2021년 대법원 판례를 들어 반박했다. 이 의원은 최초의 반독점법인 1890년 미국의 셔먼법이 노조 활동을 사업자 활동으로 규정하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1914년 클레이튼법도 언급했다. 이 의원은 공정위가 화물연대본부를 조사방해 혐의로 고발하면서 노조원의 가입 정보 등을 요구한 것에 대해선 “민감한 개인정보 요구”라고 했다. 한 위원장은 공정위 조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의원들 빠져나가 텅텅 빈 본회의장

류 의원과 이 의원 질의 때 본회의장을 지키는 의원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6~8일 올 들어 첫 대정부질문이 진행됐지만, 사흘 모두 개의 때를 제외하면 비슷한 풍경이었다. 특히 8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이 야당 주도로 가결된 후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원 퇴장하면서 텅 빈 본회의장 모습이 연출됐다.

야당 의원들 질의 과정에선 용어를 오해하거나 비아냥대는 태도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검사 기피 신청’을 허용하는 나라로 ‘오스트레일리아’(호주)를 언급했지만, 이는 ‘오스트리아’를 혼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작년 5월엔 이모(李某) 교수를 이모(姨母)로 착각해 발언하기도 했다. 같은 당 정청래 의원은 한동훈 장관에게 “왜 이렇게 깐족대요”라고 했고, 고민정 의원은 “대법원 판결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라고 묻기도 했다.

2023년 2월 8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정책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