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되면서 당내 차기 주자들이 몸풀기에 나선 모양새다. 대선 후 미국으로 건너간 이낙연 전 총리의 ‘조기 귀국설’이 도는가 하면, 김부겸 전 총리의 ‘역할론’도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다”라는 입장이지만, 비명계에선 벌써부터 “2024년 총선 승리를 위해선 이 대표에 대해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 김부겸 , 정세균 전 총리(왼쪽부터).

지난 대선 경선 때 이 대표와 맞섰던 이낙연 전 총리 측은 23일 본지 통화에서 “지금은 움직일 때도 아니고 움직여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전 총리 주변 인사들은 이르면 다음 달 이 전 총리와의 만남을 위해 워싱턴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친낙(친이낙연) 의원 일부는 내년 5월 예정인 이 전 총리의 귀국을 “앞당겨야 한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 전 총리의 싱크탱크인 ‘연대와 공생’(연공)이 오는 28일 재출범한다. 이 전 총리는 조기 귀국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연공 소속인 신경민 전 의원 등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최근엔 미국에 찾아온 자신의 지지자들을 미국 거처에 초대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와 가까운 한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본격적으로 검찰에 소환되고, 체포동의안 등이 제출되면 내년 초쯤엔 새로운 지도부를 세우자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며 “이 대표 사퇴 압박이 커지면 이후 민주당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부겸 전 총리 측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분위기다. 김 전 총리는 공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최근 경남 양산을 찾아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만났다. 또 ‘드루킹 사건’으로 복역 중인 문 전 대통령의 최측근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면회했다. 청와대 출신들과도 자주 만나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총리 측 인사는 “계파색이 옅은 김 전 총리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며 “하지만 지금처럼 당내 갈등이 심한 상황에선 나설 때가 아니라는 게 김 전 총리 입장”이라고 했다.

정세균 전 총리도 자신의 계보인 이원욱 의원 등과 만나며 당내 상황을 청취하고 있다. 야당 텃밭인 호남을 돌고 핵심 당원들의 얘기를 들으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정 전 총리 측 관계자는 “본인은 전혀 나설 생각이 없다”면서도 “주변에서 당이 시끄러울 때 좀 나서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문을 많이 하고, 정 전 총리가 당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친문 일각에선 이재명 대표와도 사이가 가까운 이해찬 전 대표가 나서야 한다는 말도 하고 있다. 야권 관계자는 “친명과 비명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은 이 전 대표뿐”이라고 했다.

이 밖에 비명계 원내 인사들도 꿈틀대는 모습이다. 친문인 전해철 의원은 여러 차례 자신과 가까운 의원들과 비공개 모임을 하거나 문 전 대통령이 있는 양산도 찾았다. 이재명 대표와 당대표 선거에서 경쟁했던 박용진, 강훈식, 강병원 의원 등 ‘97세대’의 새 얼굴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의 당권 유지 의지는 강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검찰의 칼날이 정치 탄압인 게 명백한데 사퇴할 이유도 없고 사퇴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이 대표의 지지층이 확고한 상황에서 이 대표에게 거취를 결단하라는 주장을 하기도 힘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현재까지 부산 출신의 김해영 전 의원만이 “이 대표는 그만하면 됐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오라”고 한 바 있다. 비명계 박용진 의원도 당 일각의 이 대표 사퇴 요구에 대해 “아직 그 시점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이 대표가 77.7%의 역대급 득표율로 당대표가 됐고, 대선에서도 가장 적은 득표 차로 졌는데 쉽사리 사퇴 요구를 하지 못할 것”이라며 “그럴 경우 되레 당원들에게 심판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